2022년 7월
양진채 소설가가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소설 '어느 눈길'을 앤솔로지에 발표했다며 책을 보내주었다. 양진채 작가는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스카 라인'으로 등단하고 2017년 장편 '변사 기담'으로 동인문학상 본심후보까지 진입했던 노동자 출신의 작가다.
소설 '어느 눈길'에는 2022년 인천 마을영화제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인천 마을영화제의 '배후'에는 윤종만 선생이 있었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초청 외국 감독들이 인천에서 환영회 겸 식사 한 끼를 윤종만 마을공동체 '마을과 이웃' 대표님께 부탁했다. 돈 한 푼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윤대표는 기꺼이 한 끼의 부탁에 40여 명의 인천 시민들을 설득해 십시일반 후원금 5백만 원이 넘는 예산을 만들어 냈다.
윤종만 대표와의 인연은 2012년에 머물고 있었다. 한 끼를 앞세운 오만한 탁발을 몇 배의 겸손으로 되얹어 준 셈이다.
10년 전, 2012년 5월 5일 봄날. 양평 외딴 산속으로 한 부부가 찾아왔다. 인천 청학동에서 몇십 년을 마을공동체를 일구어 가며 살아가고 있었던 윤종만 대표. 페이스북에서 간간이 주고받은 공감이 이런 만남을 만들었다. 갈 길 먼 사람 잡고 호프 한 잔 하자고 붙잡아 술집 찾다 보니 술집 이름도 '청학동'이었던 것도 신기했었던 그 인연. 쌍둥이 낳고 이리저리 살다 보니 인연이 그다지 발전하지 못하였는데... 여하튼 그렇게 해서 한 끼 탁발이 의기투합해 인천 마을영화제로 부풀려졌다.
예상치 않은 행운은 굳이 무리칠 필요가 없는 우연한 선물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냥 개막작 한 편만 했더라면. 렘브란트의 집단초상화처럼 그렇게 첫 만남의 편하고 부담없는 웃음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텐데.
크게 벌려 놓으면 없는 빈틈도 만들어 지게 마련인 것을. 영화제라는게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받는가 ?. 이전과 달리 언제든지 자기 눈맛에 맞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이 시대의 영화제는 사실 전세계적으로 영화제의 불가피한 위기와 관객의 감소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제 아무리 로컬리티와 지역 서사, 공동체 서사의 중요성을 앞세우는 영화라 하더라도 결국 보는 시간의 투자만큼 정신적인 미학적인 보상을 관객의 위치에서는 본능적으로 요구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외국 감독의 작품을 중심에 두는게 아니라 그들을 '환대'하는 주인된 로컬의 역할을 중심에 두는 관계의 영화제를 꿈꾸었을 뿐이었다.
어지간한 규모의 영화나 뛰어난 걸작이더라도 몇 시간을 앉아 영화를 본다는 것은 사실 큰 투자이다 .
보는 행위만의 영화제를 반복한다는 것은 출품 ,번역 ,초청 ,자막, 화질, 퀄리티, 작품성,시각성등을 충족시키기 위해 결국 지원, 후원, 조직, 돈과 직결된다.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감독과 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방식과 형식 외는 가능하지 않았다. 솔직히 홀로 북치고 장구치는 처지라 자막이나 번역 상영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검증을 해 낼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날 양진채 작가는 자막과 사운드의 문제로 나에게 사과를 요청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였는데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불완전하고 모자란 것을 어찌 사과를 하란 말인가요? 스스로 부끄러운 것이라면 모를까?"라고 오히려 맞받아 쳤다.
난 화려한 영화제를 위해 '관객'자격의 사람들을 만나려 온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마을과 로컬리티의 영화를 가지고 찾아온 '외국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주인'과 OTT 시대 ,우리가 가야 할 로컬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로컬리티와 마을공동체 서사라는 것을 공유하기 위한 작업으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가치와 지향으로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를 홀로 보듬고 가는 사람일 뿐이다.
개인 서사로서의 문학이 가지는 한계가 아니라 개개인의 서사를 엮어 마을이라는 새로운 주어를 가지려는 이에게 영화제의 자막이나 사운드를 문제 삼아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과하라니, 그 사과는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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