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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응원해야 한다

프롤로그

by 신지승

단지 살아 있는 동안에만 도전할 수 있을 뿐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완전한 실패다.

나의 심성과 시선으로 나의 서사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다. 침묵은 나를 지켜주는 방패였지만, 동시에 나를 갉아먹는 칼날이었다. 상처를 앞세우는 것은 스스로를 모욕하고 에너지를 왜곡하게 만들 수 있다.

국민학교 2학년, 나는 수없는 선생의 뺨세례에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 울분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도 없었던, 내 키보다 깊은 개울에서 홀로 죽음의 경험을 먼저 맛보았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때 '살아남았다'는 경험을 먼저 기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80년대 운동권의 사상적 강압과 내면의 분열 속에서도, 국가의 군대 징집 앞에서도, 예술의 이름으로 자행된 권력의 횡포 앞에서도 내 주어진 심성으로 저항하고 도전했다. 그러나 민주화 투쟁도, 그 반대도 속하지 않았기에 나의 서사는 내보일 수 없었다. 나는 투쟁도, 굴종도 아닌 그저 시대의 그림자였다.

예술의 전당에서 쫓겨나고, 차라리 홀로 1인 투쟁을 하던 때에도, 언론의 3주간 일방적인 난사로 용문산 아래 산골 마을로 숨어 도망쳤던 때에도 나는 오히려 꿈을 더 키웠다. 지원이라는 달콤한 유혹 때문에 예술, 행정기관, 지자체로부터 무수히 모욕을 받으면서도 꿈을 더 키워 살아남으려 했다. 쉬지 않고 자존을 지키기 위해 도망쳤고, 그럴 때마다 꿈은 더욱 부풀어 올려야 했다.

5톤 트럭 위에서 강원도 최북단의 DMZ 마을부터 제주도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무지하고 가난하며 힘없는 이들의 마음으로부터 위안을 얻었다. 지난 2년 넘게 1층의 아버지 어머니를 돌보고, 2층의 쌍둥이 남매를 먹이고 가르치며 오르내렸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놓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녹슬고 무딘 무기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나는 완전히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첫 번째 과제는 이분법적인 정치문화 속에서 끌어내어 무겁지 않더라도 존재헀던 사람의 무게로 스스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위로 향했던 것이 아니라 아래로 달려갔다는 점이다. 그것이 나의 성공이고, 나의 권력이며, 나의 자본이었다. 단지 그들과 전략이 달랐을 뿐,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이제 나의 조각난 기억과 질문들을 염주처럼 꿰어 내놓고 싶다. 애써 상처를 부풀리지 않고, 누렸던 기쁨 또한 감추지 않아야 한다. 누구나 돈, 권력, 성공의 기준으로 살아가듯,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 아이들이 아빠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그 아이들에게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혈혈단신 도망 다니며 꿈을 키웠던 한 사람이 다다를 땅의 GPS를 알게 하기 위해, 호기심 어린 공감의 탁발을 구할 수 있을까 싶어.

20살에 길을 나섰던 이가 60세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40년 만의 귀향이자, 30년을 넘는 예술과 정치적 방황의 여정이었다. 이제 언제 이 여정이 끝날지 모르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개인적 상처는 정치적 언어로 환원되지 않기에, 사회적으로 더 말하기 어려운 고립된 고통이 되곤 한다. 집단의 슬픔은 '의미'로 승화되어야 하지만, 개인의 시간은 잊히고 외면받기 쉽다.

이것은 나만의 권력, 자본, 성공, 신화를 위한, 돈키호테 같은 한 사람의 미시 서사다.

수 없이 '굳이' 떠벌려서 무슨 의미일까라고 묻는 스스로에게 이제 이 시간 이렇게라도 내놓지 못하면 누구도 물어주지 않을 것 같다고 대답한다. 모두가 그렇게 사라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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