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공포와 마주했다. 진주 시골 할머니댁, 민가와 조금 떨어진 외진 개울가. 한낮이면 마을 아이들이 몰려와 수영을 하던 그곳에 너무 일찍 도착했던 것일까. 아무도 없는 그 적막 속, 바위에 홀로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 순간, 발이 미끄러져 깊은 개울 못에 빠져버렸다. 내 키를 훌쩍 넘는 그곳으로, 수영 한 번 배워보지 못한 아이가 말이다.
여덟 살이었는지 열 살이었는지,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내 유년 시절의 잊지 못할 공포의 드라마이자 영혼에 각인된 기쁨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 개울 못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저 허우적거렸다. 바닥은 알 수 없었고, 수영을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금세 물을 먹어 숨 쉬기조차 어려웠다. 죽음을 모르는 아이가 극한의 공포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위로 솟구치려고 바둥거렸지만 물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 그런데 어느 순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바닥을 치고 위로 떠오르려고 했다 .곧 그것도 몇번 시도했겠지 그리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바닥을 쳐서 옆으로, 다시 바닥을 쳐서 조금 더 옆으로. 아마 바닥을 몇 번을 쳤는지 기억에 없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 깊이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맛보는 기적이었다. 연못은 깊었지만 개울의 연못이었기에, 아래나 옆으로는 풀 같은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밤새워 읽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그 저녁부터 새벽까지의 긴장과 흥분의 시간을 또렷이 기억하듯, 그 유년 시절의 기억 또한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다른 어릴 적 기억들은 희미해졌지만, 갑작스러운 공포, 개울의 깊이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 그리고 뒤따른 살았다는 쾌감의 경험은 두고두고 내 삶의 드라마에 영향을 미쳤다.
어쩌면 그 사건은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에너지와 주술의 뿌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옆으로 향하는 상상력'을 알게 하였다. 간혹 더 이상 고통을 감내할 힘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바닥을 향해 더 깊이 내려가야 비로소 옆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혼자 강원도 인제 흘리계곡을 걸었다. 평일이라 그곳을 찾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 깊은 산을 혼자 걷는다는 것은 시간이 가면서 점차 가벼운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문득 50년이 넘은 어릴 적 빠졌던 개울 연못의 공포가 떠올랐다.
그런데 멀리서 누런색의 동물 무리들이 설악산 쪽에서 개울 쪽으로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멧돼지 무리인 줄 알았다. 몸을 숨길 큰 바위를 찾아 허겁지겁 달리다가 바위에 한쪽 무릎이 부딪혀 다쳤다. 바위에 숨어 지켜보니 산양 가족들이었다. 그때 그 유년시절, 죽음의 공포와 생존의 기쁨을 안긴 내 인생 첫 드라마가 여전히 내 안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죽음, 공포, 옆으로, 살았다는 기쁨, 기적 그 오래된 영화의 의미와 숨겨진 해석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