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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민주화는 글로벌미디어에 의해 완성되는가?

by 신지승



mbc.sbs 글로벌 미디어와 합작하는 시대가 왔다

지금과는 다른 방송갑질시대의 이야기이다.

어느 여름날, 도시 아이들과 함께 생태영화캠프에 몰두하던 내게 방송 외주 PD의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 어디서 촬영하세요?" 당시 마을 영화는 방송국의 부족한 프로그램을 메꾸기에 괜찮은 아이템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좀 더 주도적으로 방송을 활용했어야 했는데, '좋은 게 좋다'는 나의 태도가 오히려 마을영화에 대한 많은 편견을 낳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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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 아이들이 자연을 체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며, 마을 할머니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캠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PD의 흔쾌한 반응에 나는 마을 할머니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어우러지는 훈훈한 그림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이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나의 오랜 방송 경험상, 한적하기 그지없는 생태영화캠프에 방송이 나간다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올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공중파'라는 이름이 주는 막연한 홍보기대감, 그리고 도시 아이들이 방송 출연 경험을 통해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유혹은 떨치기 어려웠다. 대중 작업을 하는 나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개그맨 00도 와요!"라는 PD의 말에는 적잖은 기대감마저 피어올랐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1인 미디어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PD, 개그맨은 물론 작가까지 총동원된 외주 군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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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캠프에 도착했을 때, 낯선 질문들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특히 촬영 중 "아저씨!"라는 개그맨의 호칭에 "선생이나 감독이라고 불러주세요! 아이들도 있고 .."라고 짧게 응수하자, 그는 "여기 오면 스타로 키워준다면서요?"라며 바닥을 기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속으로 '스타 문화를 극복하고 일상적인 자연 속 영화 찍기를 가르치는 게 이 캠프의 목적인데,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해주니 내 이야기를 할 순서인가' 생각했다.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그 체험을 드라마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려던 찰나, PD가 "컷!"을 외쳤다. 도대체 뭐지? 이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미처 다 말하지도 못했는데. 그 뒤 나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판단해야 하는 뛰어난 기술을 발휘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들의 진짜 의도를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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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들과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동안, 작가는 몇몇 할머니들과 심상치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의 시선을 피해 속닥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영 거슬렸다. 마치 내 집에서 CIA 요원들이 작전을 짜는 듯한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작가는 태연하게 "할머니들과 영화 한 편 찍자고 설득 중인데요."라고 답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여기는 영화 캠프예요. 할머니들은 그냥 밥 해주러 오신 거고요. 그리고 한다고 해도 캠프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찍어주어야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할머니들끼리 하신다는데요?"라며 할머니들이 결정했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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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안 해요. 마을 영화는 할머니들과 제가 함께 만드는 거지만, 생태영화 캠프는 도시 아이들이 숲 속에서 자연의 상상력으로 영화를 만드는 겁니다." 그러나 나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생태영화캠프에 와서 PD가 연출하고 동네 할머니들과 자기들끼리 '마을 영화'를 찍으려 했다. 심지어 남자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타고 온 차량 운전수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려 했다. 황당함, 충격, 모독, 모욕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손님에게 성질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작은 카메라를 들고 이 황당한 광경을 담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 나는 그들에게 날릴 미사일을 발사했다. "당신들이 지금 무엇을 했는지 알고나 있나요? 개그맨까지 데리고 와서 운전수랑 할머니랑 연애하는 이야기 찍고 갔다니요. 제가 아주 멋진 작품 하나 공개할 테니 잘 감상해 보세요!" 제목은 바로 "OO 방송 운전수, 마을 영화 주인공 되다"였다. 메일이 발송되자마자 전화가 왔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할머니 출연료 20만 원…." 나는 코웃음 쳤다. "내가 그 돈 받자고 연락했겠어? " 전화를 끊고 난 뒤 곧바로 "400만 원 드리겠습니다"라는 답장이 왔다. 나는 다시 메일을 보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됩니다. 더 이상 협박은 없을 겁니다. 그 돈은 받을 수 없지요. 출연료도 받지 않겠습니다. 우리 동네 할머니 밥은 내가 사야지, 왜 당신들이 꾸린내 나는 돈으로 사나요? 관두세요." 출연료를 받는 순간 방송을 허락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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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고맙다는 메일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뒤로 메일은 오지 않았다. 나의 돌탑 영화는 방송이라는 형식적인 소비 관습에 갇힌 '공동 창작'은 결국 속 빈 껍데기로 소비된 것에 불과했다.


'공동 창작'이라는 미명 아래 가려진 진실


사실 '공동 창작'을 외쳤지만, 방송 프로그램들은 대본, 촬영, 편집은 모두 방송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마치 관광 상품처럼 포장된 지역 이미지처럼, 진정성 없는 허상이었다. 또한 그들의 작업에는 인문학적 질문이 부재했다.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의제는 철저히 배제된 채, 오직 이벤트성 에피소드만 부각되었다. 분단의 상처와 농촌의 현실이 담겨야 할 자리는 그저 농촌 노인들이 기존 방송드라마를 따라 하는 수준의 퍼포먼스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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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영화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사유를 촉발하는 철학적 장치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 당시 방송이나 지금의 방송도 일정한 마지노선이 있다. 프로그램에 따라 다르지만 특정한 깊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주민들을 단순히 배우가 아닌, 철학적 서사의 공동 저자로 적절히 브랜딩 하여 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중 창작과 인문학적 깊이를 더하는 길인데 그걸 하지 못했다.


나름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생태영화캠프는 양평을 떠나면서 이어지지 못했다. 양평 숲 속극장만큼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이 경험은 내게 방송의 한계와 진정한 공동 창작의 의미에 대해 깊이 성각 하게 했다. 글로벌 미디어와의 합작 시대에, 이제는 '방송 갑질'이라는 문화는 점점 옅어질 것이다. 한국 방송의 운명은 미디어의 양극화로 인해 지역소멸처럼 그렇게 낮은 수준의 정체성으로 인해 점점 대중의 관심을 잃어 갈 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글로벌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지형이다. 서글프고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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