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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와 나

by 신지승


2022년 뱅크시 다큐 Banksy and the Rise of Outlaw Art, 2022년 국제마을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위해 이메일로 뱅크시 그룹과 접촉해서 수입 가격을 흥정했다

그들이 최소 제시하는 금액에서 다시 반을 요청했다.

안돼

나도 돈이 없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아 단 1회 상영만 할께 좀 깎아줘

안돼

해줘

이번엔 상영 안 하련다

사실 좀 심한 요청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난 직후라

지루한 흥정 끝에 " 너 누구야?"란다. 좀 너무 하다는 뜻일 것이다.

이 한국의 끄트머리 사는 생활인들도 당신의 활동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지만 돈 몇십만 원에 상영을 하지 못한다는 게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2022년도에는 개인 후원도 많지 않을 시가였다

백남준의 말처럼 '피카소룰 모르는 곳으로

예술가가 가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보시를 바랐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이후에 한국의 영화배급사에서 그 영화판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이제는 뱅크시는 개인에서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뱅크시의 정치적 게릴라전술을 차용한 그의 예술과 정치가 결합된 실천과 전략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나는 챗 GPT에게 나의 활동과 뱅크시 활동의 공통점을 알려 달라 부탁했다.

10가지의 공통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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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통점 10가지

제도 밖의 장(場)을 확보 ---- 갤러리·극장 중심이 아니라 거리/마을을 창작과 상영의 무대로 삼는다.

엘리트 예술에서 생활예술로의 전환 ------ 예술을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활인의 감각과 만나게 한다.

정치·사회 비판의 내장 --- 불평등, 전쟁, 소비주의, 지역 소멸 등 구조적 문제를 예술 언어로 비틀어 제시한다.

즉흥성과 개입성 ------ 현장에서의 즉흥적 구성/행위를 미학의 중심으로 삼는다(돌탑영화의 현장 즉흥 대사, 뱅크시의 게릴라 설치).

기억과 기록의 정치 ---- 사라지는 거리의 감정, 마을의 얼굴을 아카이브로 남겨 ‘누가 기억을 소유할 것인가’를 묻는다.

낮은 곳의 주체화 ----- 뱅크시는 ‘보이지 않는 다수’를, 당신은 **“배우가 아닌 주민 전체”**를 주인공으로 세운다.

유통 질서에 대한 교란 ----- 작품이 시장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공유/대화에서 완성된다는 관점을 공유. (마을에서만 상영되고 공유)

형식 혼종성 ------그래피티·설치·퍼포먼스가 뒤섞이는 뱅크시처럼, 다큐·드라마·연극·마을축제를 교차시키는 돌탑영화.

상징적 장치의 활용 ----- 뱅크시의 스텐실 아이콘처럼, 돌탑·마당 상영·광장, 축제가 프로젝트의 상징 문법이 된다.

관객을 ‘행위자’ '창작자'로 전환

작품을 보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참여 → 토론 → 재생산으로 이동시키는 구조.

2) 차이점 6가지

익명성 vs. 실명성·관계성 ----- 뱅크시: 익명/잠입/충격을 통해 제도에 금을 낸다.

돌탑영화: 실명/관계/협력으로 공동체 신뢰를 쌓아 구조를 바꾼다.

파열의 미학 vs. 축적의 미학 --- 뱅크시: 한 방의 이미지로 즉각적 인지·담론 폭발.

돌탑영화: 다수의 에피소드와 마을 누 적으로 장기 변화를 만든다.

소유 비판 vs. 분배 설계 ---- 뱅크시: 시장의 욕망을 풍자·전복.

돌탑영화: 공동 창작·공동 수익 분배를 구체 설계.

개인 작가 시스템 vs. 집단 창작 플랫폼

뱅크시: 일관된 작가 서명(서사). 돌탑영화: 감독은 촉진자, 저작은 집단적.

도시성 중심 vs. 로컬 / 농촌 / 고령자 중심 뱅크시: 글로벌 도시 담론.

돌탑영화: 마을·고령자·세대 접속이 초점.

충격·아이러니 vs. 돌봄·회복 - 뱅크시의 감정 곡선은 아이러니/풍자/분노.

돌탑영화는 존엄/회복/연대로 감정을 수렴.

한 문장 정리

뱅크시는 ‘보이지 않던 다수’를 드러내기 위해 세계의 벽을 두드렸고,
돌탑영화은 ‘들리지 않던 다수’를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해 마을의 마당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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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스에 대한 영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을극장 곳곳에는 뱅크시의 흔적이 많다.

물론 박수근과 한국의 작가들의 작품과 흔적들도 몇 있다.

아마 언젠가 뱅크시는 이 휴전선 마을로 와서 자신의 그림을 남길 지 모른다.

내가 그때에도 이 마을에 대한 의미를 조금 전달하였으니깐

내가 가야 할 예술과 정치의 실천과 전략과는 차이가 크지만

나는 휴전선 10KM 최북단 마을에 한국전쟁 당시의 삐라를 마을벽화로 만들어 가는 작업을 기획했다.

처음에는 삐라벽화골목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버티다가 예산이나 호응이 한계에 달하자 중도에 멈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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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군이 당시 중공군에게 뿌렸던 아들아 돌아와라라고 쓴 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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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삐라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유엔군이 북한 주민들에게 뿌린 "쌀을 감추라 "라는 메시지의 삐라 그림은 창고 한켠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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