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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에서 쫓겨나 한달동안 전국을 순회하다

by 신지승



종로 2가에서 대치동 창고로

종로 2가에 있던 영화연구소 사무실이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경제적 이유였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처럼 전당포를 매달 드나들며 비디오플레이어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녀야 했다.

방송국에서 알게 된 후배 000의 소개로 대치동의 한 비디오 영상제작사 사무실 옆, 반쯤 비어있는 창고로 이전했다. 그래도 내가 꿈꾸어온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추진해야 하는데, 일단 명맥은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버텼다.전체 30평 되는 지하실은 복도를 중심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비디오 영상업체였고, 또 하나는 신문 지국이었다. 지국 사장은 창고에서 지내는 나와 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신문을 돌리면서 건강한 삶을 살아보려는 나의 꿈은 사라졌다.1년이 지나자 결국 비디오 영상업체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고, 신문 지국도 사무실을 내놓았다. 이제 더 이상 내가 갈 곳이 없어졌다.

지하실 전체 임대와 선글라스 복수

대출이라도 받아 지하실 30평 전부를 내가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신문 지국과의 계약을 할 때, 지국장앞에서 어떻게 뽐내어 볼까 생각하다가 검은 선글라스를 구했다. 30대의 젊은 창고 살던 사람이, 그것도 지하실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자기 앞에 앉아 있으니 신문 지국장은 당황했다. "이 사무실을 제가 임대하기로 했습니다." "왜 선글라스를...?" "그건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내가 받은 모욕을 갚아줄 방법이 당시 나의 빈약한 상상력으론 그것밖에 없었다. 찌질하고도 독특했다.

예술영화와 독립영화제작

영화잡지 '로드쇼'와의 영화 100주년 기념 예술영화 상영

10인 한국 감독 초대전

프랑스,독일문화원과의 후원으로 서울의 예술의 전당등 5대 도시 예술영화화순회전

35미리 영화제작 워크숍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두 축을 통한 한국영화의 방향에 대한 적극적인 사회적, 문화적 활동을 왕성하게 벌렸다.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 이 활동은 겨우 1년을 버티다가 다시 신촌 옥탑방 사무실로 옮기게 된다.

단편영화 제작 시도와 좌절

대치동 지하실 사무실로 후배가 찾아왔다.

"형, 단편영화 하나 찍고 싶은데요..."

당시는 지금처럼 단편영화제가 거의 없었고, 1993년 서울단편영화제가 유일했다. 그곳에 출품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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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 집행위원장 -생활인과 공동창작 ,탈상업적 상상력의 대중창작시대 돌로 영화만들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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