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도시 영화순례전은 예상을 초월한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5개 도시를 한 달 동안 포기하지 않고 마쳤다. 이후 16미리 필름으로 단편영화를 만들어 가면서 다양한 강좌기획을 통해 수익사업과 대중교육을 추진해 나갔다. 오히려 대중들의 영화연구소의 활동이 신뢰를 받고 35미리 필름워크샆과 강좌기획은 상당히 호응이 좋았다. 35미리 제작 워크숍은 극장 개봉작 현장과 연결해 현장과 영화아카데미를 결합하려는 기획이었다. 때 마침 운명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김기덕 감독에게서 자신의 데뷔작 ' 악어' 연출스탭이 하나도 없다고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무명 데뷔감독의 현장스텝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었다. 당시는 한국영화가 왕성하게 꿈틀거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현장을 바로 경험하고자 한다면 차후 2기 워크샆 수업을 듣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에 동의한 3명을 신청받아 '악어' 연출부로 보냈다.
35미리 워크숍은 원래 공동 수료작으로 35미리 단편 제작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종 지원작이 선정되자 상황이 급변했다.워크숍생들은 지원작 선정에 불만을 표출하며 수업 거부를 결의했다. 설상가상으로 김기덕 감독 연출부로 파견된 3명마저 악어 촬영현장을 박차고 나와 수업 거부에 동참했다.
"감독이 컷 개념도 없는 아마추어감독이라 배울 게 없었다" 며 악어 현장으로 보낸 나에 대해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사실 당시 김기덕 감독은 뛰어난 시나리오 능력으로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에 선정될 정도였지만, 현장 경험은 부족했다. 그의 특유의 이야기 창작 능력과 미장센 감각은 현장에서의 장악력 부족으로 인해 가려질 수 밖에 없었다. '악어'는 김기덕감독에게도 갑작스러운 데뷔작이었다.
"나 데뷔하려고 해!" 어느 날 사무실로 와 불쑥 그렇게 내뱉었다.
"데뷔해도 될까?"라는 그의 말에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언제 기회가 올지도 모르는데 " 라며 동의했다.
단편영화를 찍고 작품을 영화제에 출품하고 35미리 극장영화감독으로 데뷔를 하는 표준적인 순서를 굳이 따라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명동 같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조용히 찍으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 여하튼 김기덕 감독은 나에게 악어의 감독 데뷔를 그렇게 알렸었다.
김기덕 감독은 '악어' 촬영 기간 중 촬영이 없는 날이면 종종 나의 촬영 현장을 찾아와 술을 마시곤 했다. 그의 특유한 여유, 혹은 영감을 받는 방식은 나를 당혹하게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악어' 제작 발표회에 초청할 정도로 그 당시에는 가까운 사이였다.
'악어' 촬영 현장에 가봤다. 당시 이동삼 촬영감독이 컷을 구상할 때, 김기덕 감독은 그 특유의 장난기를 발휘하곤 했다. 그의 개성이 산만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그것은 감독만의 현장이었다.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촬영감독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하고, 촬영이 감독의 디렉션에 종속되기도 하며, 촬영감독이 구도나 색감을 제안하고 집행하기도 한다. 특히 데뷔감독과 현장경험이 많은 촬영감독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김기덕 감독의 촬영 현장에서 탈출하여 수업 거부에 합류한 그 3명은, 훗날 세계적 거장이 되어버린 김기덕 감독의 영화적 현장과 영감을 받는 방식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면 가장 가까이에서 김기덕의 한계를 먼저 경험하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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