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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하 Sep 14. 2023

해고만큼 고통스러운 임금체불

씁쓸한 나의 첫 임금체불 경험은 올해 5월부터 시작되었다. 13년 차 인사담당자로서 새로운 조직에 몸을 담게 된 나는 인사를 총괄하는 전권을 줄 테니 시작은 미비하지만 그 끝이 창대한 조직을 만들어보자는 지인이자 회사 임원의 권유로 합류하게 되었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 황무지에 씨앗을 심었다. 직급체계와 임금 테이블, 보상, 평가제도를 설계했고 기타 일하는 방식, 복리후생 관련 인사제도와 업무 프로세스 세팅을 한 달안에 완료했다. 과거 쌓아온 지식과 주변 네트워킹을 총 동원하여 각종 필수서류도 완비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확고했고, 쉽지 않은 경영환경이었지만 임원들은 밥도 안 먹고 발로 뛰어가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었다. 나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역할을 확대해서 새로운 교육 사업을 기획했다. 한 번도 걸어가 본 적 없는 길이었지만, 조직이 성장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3개월이 지나갔다.


그러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당월 급여를 차월 10일 날 지급하는 구조였는데, 회사 자금난으로 빠르면 한 달 뒤에나 지급을 해주겠다는 통보였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지인이자 임원이셨던 A님이 K대표를 대신하여 이미 2달치의 급여를 사비로 지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러셨다고 한다.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함께 이곳을 나가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임원 A님의 책임감은 남다르셨다. 이미 과거 스타트업 기업을 성공적으로 일궈냈던 경험과 자신의 역량을 총 동원하여 어찌 되었든 이 회사가 굴러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들고 퇴사하겠다고 하셨다. 나 역시 너무 힘든 상황이었지만, 이 상황을 함께 돌파해보고 싶었다. 이대로 그냥 포기하면 기존에 다니던 너무나 안정적이고 훌륭한 회사를 굳이 스스로 박차고 나왔던 내 행동이 용서가 안될 것 같았고, 처음 가졌던 결심을 어떤 형태든 마무리하 싶었다.


그렇게 급여는 받지 못했지만, 모두가 열심히 일했다. 함께라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리더(임원)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무언가 그동안 안되었던 일들이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수익성을 미비하지만 새로운 영업채널을 발굴했고, 지난 3개월간 소식이 없던 정부 지원사업에 통과되었다는 소식들이 간간이  들려왔다. 아마도 당시에는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일단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우리 급여가 나올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잠잠한 통장과 사라진 희망은 우리 모두를 두 번 죽였다. 약속했던 한 달이 되고, 무려 다음 월급날이 도래했다. 총 2개월의 임금을 받아야 하는 시점. 그나마 지난번에는 직접 사원들을 소집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던 K대표는 아얘 얼굴을 비치지도 않았다. 그저 통보만 있었다. 모두가 아무 말이 없었다. 14시쯤 통보를 받았는데, 이후 직원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나는 그들에게 왜 자리를 마음대로 비우냐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 없었다. 당장 나 스스로도 이곳을 당장 박차고 나가고 싶었으니깐. 


그렇다고 임금체불 신고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현재 진행 중인 정부지원 사업들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 속도 타들어가는데,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 본다. 올해 태어난 아이와 아내에게 더욱 미안했다. 일이 도저히 손에 안 잡혀 옥상에 서서 그냥 30분 정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13년. 그동안 쉼 없이, 나태함 없이 일해왔고 물론 아직까지도 부족함이 많지만 나름 소속된 조직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인정도 받아왔다. 그렇게 나의 첫 임금체불은 장기적인 사태로 돌입했다.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아얘 지하실로 내려가고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내려온 사무실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힘내보자는 말을 메신저에 쓰면서도 마음속에 확신은 1도 없었다. 이런 게 영혼 없는 글인가 보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더 이상 대출이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다 체불청산지원 사업주융자제도(근로자 1인당 1.5천만 원, 사업장별 최대 1억 5천만 원)를 알게 되어 대표에게 해당 대출 신청을 요청했다. 그렇게 근로자들에게 필요 서류를 받고, 임금의 일부라도 지급할 수 있게 되었다. 


해당 시기 퇴직금까지 밀린 퇴직자는 체불임금 신고 후 간이대지급금(기업이 파산한 경우에는 도산대지급금, 최대 1천만 원)을 신청해 자신의 임금 일부라도 받고자 했다. 체불기간이 길어질수록 일부로 권고사직을 받고 싶은 자발적 직원들은 많아졌다. 실업급여라도 신청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사실 권고사직은 회사의 보상이 필요하다. 보통 1~3개월치 월급은 함께 제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근로자의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더 다녀봐야 어차피 임금을 받을 수 없으니 이렇게 실업급여라도 받는 편이 근로자 입장에선 최선일 수 있다.


가끔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눈앞에 닥칠 수 있다. 그리고 주로 임금체불과 같은 나쁜 일들은 타인에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왜인지 나를 낮추는 것 같고, 실제로 모든 근로의욕과 자존감마저 상실시킨다. 더구나 친한 지인에게는 더욱이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지 말아야 할 가장 속상한 경험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이런 조직에서 일했다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글을 쓴다. 악덕 업주들에게는 경각심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한 스스로 이때의 경험을 잊어버리지 않고,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


임금은 근로자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돈은 빌린 사람보다 빌려준 사람이, 폭력은 때린 사람보다 맞은 사람이 훨씬 더 오래 아프고 힘들다. 제발 임금도 제때 안 주면서 되려 당당하고 생색내는 악질 회사와 고용주의 악습이 하루빨리 근절되기를 바라본다. 또한 한번 밀린 임금은 앞으로도 받기가 어렵고, 이와 같은 임금체불은 반복될 확률이 매우 높다. 악덕사업주 말은 들을 것도 없다. 신고가 곧 답이다. 어차피 월급도 제때 못주는 망해가는 회사에 미련 가질 이유가 없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과 책임은 사업주에게 있다. 


물론 소규모 여행업, 자영업 등 현금흐름 상황이 일시적으로 어려워 가끔 불가피하게 또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여러 이유로 사업이 어려워진 선량한 사업주들도 여럿 존재한다. 어떤 케이스에 해당되든 이와 같은 상황은 근로자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김창옥 강사님이 강연 중 하셨던 말씀처럼, 우리가 화살을 맞으면 누가 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이 화살을 빨리 빼내는 것이 중요하다. 위축되지 말고 더욱더 강건하게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지키고 차근차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내야 한다. 그렇게 당장의 쓴잔은 언젠가 당신과 내가 마실 다음 잔을 더욱 달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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