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하 Sep 15. 2023

이런 사람들이 퇴사하면 돔횡챠!

회사가 망해갈 때 가장 먼저 도망갈 수 있는 사람은?


대표이사 등 전문 경영인이나 임원, 재무 관련 리더 또는 주무사원, 인사팀장, 나보다 오래 다닐 것 같았던 고인물 대선배 등 회사의 중요 정보를 잘 아는 사람이 해당한다. 이들의 퇴사는 우리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이나 더 나은 근무조건을 찾아 이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짧은 주기로 이런 사람들의 퇴사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해당 조직이 처한 상황이 매우 안 좋음을 의미한다. 이 때는 정말 망설이지 말고, 마음을 굳게 먹고 이직을 준비해야 한다. 배가 난파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는 서둘러 배에서 내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구보다 회사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이 다른 배에 승선도 아니고 기꺼이 망망대해로 뛰어들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때는 망설이지 말고 그냥 빨리 나와야 한다. 탈출을 위한 골든타임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누가 보더라도 큰 배에 타고 있다면 괜찮다. 파도를 극복할 수 있는 큰 선체와 든든한 연료와 동료들도 작은 배에 비하면 충분한 편이다. 배에 펑크가 나면 별도 TF나 팀을 조직하여 납땜을 할 수도 있다. 조금 배가 흔들린다고 괜히 휘둘리지 말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버티다 보면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다시 배가 복구되어 있거나, 거친 파도가 모두 지나가고 아름다운 수평선이 펼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타고 있는 배가 작고, 인원도 몇 되지도 않는 조직에 있다면 이런 주요 포지션의 이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개하고 싶은 첫 번째 조직 사례는 나의 오래된 지인의 케이스이다. 인사담당자인 그는 입사일 기준 1~2개월 전후로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 전원이 모두 사퇴했고, 빈자리는 곧 새로운 임원들로 채워졌다. 당시 조직의 위기감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자유롭게 점심시간과 티타임을 즐겼고, 이전 조직에 비해 업무량도 적었고, '와 이런 게 수평적인 조직이구나'라는 잘못된 착각에 모두가 빠져있었다. 하지만 데이터는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경영진 외에도 인사, 재무조직 리더와 입사 1년 차 이상 퇴직자가 전년 비 2배 이상 급증했다(이 이후로 는 새로운 조직에 전배, 입사하면 제일 먼저 데이터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9개월이 흘렀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낀 지인의 퇴사 월에는 같은 인사팀에서만 두 명의 리더와 세 명의 실무자가 퇴사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너무 적절했다. 이후 회사 적자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었고, 당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던 리더와 동료들의 탈출(이직)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고 한다.


두 번째 사례는 내가 직접 경험한 망해가는 조직의 케이스이다. 평소 잘 맞고 좋아하던 지인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에 누가 봐도 안정적이고 좋은 회사를 과감히 그만두었다. 하지만 부푼 꿈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우리는 이곳에서 자신과 가족 명의의 법인카드로 휴대폰 사용료, 오피스텔 임대료, 기타 지출은 아낌없이 펑펑 쓰면서 정작 직원들의 급여는 체불시키는 최악의 고용주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왜 우리가 오기 전에 주요 임원, 리더들이 우르르 퇴사했는지에 대해 그렇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제부터 우리가 잘 해내면 된다는 자신감에 차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조직은 이미 수년 전부터 발생한 자본잠식으로 언제 망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재무상태를 숨기고 있었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발생하는 부채의 이자 비용보다도 못한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었다. 언제 당장 회사가 문을 닫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우린 이 조직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렇게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추락했다.


적절한 탈출 타이밍을 놓친 대가는 결코 작지 않다. 배들이 침몰하는 시기는 대부분 비슷하다. 거친 풍랑과 해우를 만났을 때. 즉, 우리 배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든 시기에 침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 보니 이 시기에 다른 배에 승선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바다에 뛰어들자니 너무나 겁이 날 것이다. 그렇게 망설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원래 가지고 있던 노(paddle) 말고도 하나 더 아니 서너 개의 노를 함께 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급한 데로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사람을 승선시켰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대부분 이렇게 침몰하고 있는 조그마한 배로 헤엄쳐 오는 사람들 역시 다른 적절한 배를 찾지 못하였거나, 쫓겨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되려 노 젓는 법까지 알려주며 열심히 노를 저어도 배는 제자리에서 나아가지를 않는다. 구멍을 메우고 또 메워봐도 점점 커지는 구멍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아 진짜 이러다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는 심지어 배에 있던 식량도 떨어졌다. 먹을 것도 못 먹으면서 노만 저으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노만 젓다가 바다로 빠진다. 그리고 그제야 상실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무엇보다 제때 뛰어내려 다른 배에 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그곳까지 헤엄쳐 갈 수 있는 체력 자체가 바닥나버리는 최악의 상황에 당면할 수 있다. 물론 바다는 무섭고, 우리의 책임감은 무겁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내로서, 또한 누군가의 부모나 자녀로서 책임져야 할 책무가 있다. 무거운 돌덩이들을 메고 다른 배도 아니고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전혀 가늠이 안 되는 시커먼 바다로 뛰어내리기가 당연히 망설여지고, 보통 이런 위치가 되면 골든타임은 대부분 놓치게 된다.


내가 망해가는 회사에서 일하며 느낀 가장 큰 교훈은 바로 배가 침몰할수록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침몰하는 배에서 나만의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이다. 누군가는 당신의 여유를 질타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 여유를 빼앗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억지로라도 만든 여유가 그나마 당신이 버틸 수 있는 쿠션이 되고, 다른 배를 찾아볼 수 있는 시야와 시간을 줄 것이다. 때로는 정말 필요한 순간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여유조차도 만들 수 없는 환경이라면 과감히 바라도 뛰어드는 편이 현명할 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해고만큼 고통스러운 임금체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