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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하 Sep 20. 2023

안 떠나는 게 아니라 못 떠나는 거다

침몰하는 배에서 못 뛰어내리는 이유


안정적인 배에 타고 있을 때는 몰랐다. 약 10년간은 큰 배에서 내가 설사 부족해서 쫓겨날지언정,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본 적도 없었다. 대부분의 선원들은 그저 이 배에 함께 타고 있는 선장이나 동료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또는 이 배에서 더 이상 내가 성장이나 승진을 기대할 수 없을 때에 다른 배에 옮겨 탈 생각만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바다에는 작든 크든 언제나 파도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파도는 작은 배일수록 위협적이다. 만약 이렇게 작은 배가 방향을 잃고, 심지어 능숙한 선장과 선원이 없는 상황이라면 상황은 절망적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용맹하고 유능한 인재를 외부에서 영입할 수도 없다. 그럴만한 재원도 없고, 훌륭한 인재가 여기에 올 이유도 없다. 노를 저어야 하는데, 정작 하는 일은 배에 들어온 해수를 퍼내거나 구멍을 막기에 급급이다. 허리를 피고 고개를 들어 배가 나아가는 방향이나 주변 사람들을 봐야 하는데,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이미 배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과거 직장생활 대부분을 큰 배에서 생활할 때에는 이런 조직에서 내가 근무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주변에 작은 배에 탑승하여 고생하고 있는 지인들의 속상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생각했었다. '왜 배가 침몰하기 시작할 때에 탈출하지 못했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저 안타까워했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작디작은 돛단배에 탑승해서 배가 무릎까지 바다에 잠기고, 끊임없이 가라앉는 지금에서야 확실히 알겠다. 그들은 아니 우리는 안 떠난 것이 아니다. 아래와 같은 여러 이유로 인해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1. 배가 침몰하는 위치와 시기는 대부분 비슷하다

조용히 침몰하고 있던 배가 결정적으로 바다에 수장되는 시기는 보통 태풍을 만났을 때이다. 배의 규모가 커 웬만한 바람과 파도를 헤치고 나아갈 수 있거나, 작은 배이지만 힘든 여건 속에서도 훌륭한 선장과 뛰어난 선원들이 의기 투합하여 위기를 돌파하는 소수의 케이스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작은 배들은 이러한 시기에 대부분 침몰한다. 그렇게 그들은 태풍이 지나고 난 뒤의 잔잔한 바다와 태양을 미처 볼 수가 없다. 이런 시기에 큰 배라고 할지라도 당장의 위기 돌파에 온 힘을 다하기에 새로운 선원을 영입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되려 비슷한 규모의 작디작은 배에서 함께 노를 저어야 할 동료의 부재를 채워줄 노련한 선원을 종종 찾을 뿐이다. 그리고 보통 같은 위치(동종업계)의 모든 배들이 함께 위기를 겪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해당 시기에는 신규 채용보다는 경력을, 자연히 이직도 매우 어려워지는 시기이다.


2. 누구도 경고해주지 않는다

배는 어느 순간 갑자기 침몰하지 않는다. 배에 구멍이 나더라도 서서히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배의 침몰에는 원인이 존재한다. 선장이나 선원이 운전을 잘못해 암초와 부딪치거나, 가야 할 방향을 잘못 잡아 배의 연료가 바닥나 가거가, 항해에 너무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일기예보의 경고를 무시했거나. 무언가 반드시 결정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그리고 배에 타고 있는 사람 중 누군가는 이와 같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다만 절대로 선원들에게는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이 결코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와 같은 이야기도 안 하는 자질이 없는 선장들도 존재한다. 내가 탄 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다 못한 상위 리더들이 구성원들에게 현실을 공유해 주었고, 그제야 다른 배로 승선(이직)을 준비한다. 이런 무책임함은 근로자로 하여금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증발시키며, 동시에 조급해진 사람들의 마음만큼 개인이든 조직이든 부정적인 행위와 결과를 만들어낸다.  


3. 홀몸이 아니다

보통 배가 침몰하시 시작하면 공포감과 회의감이 모두를 엄습한다. 이미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모두가 탈출하는 이 상황에 조용히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선장도 배를 포기하고 방치했음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선원들의 다음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리더도 종종 있다. 대부분 이들은 홀몸이 아니다. 책임져야 할 가족과 짊어진 책임감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무턱대고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 가라앉는 속도가 다른 그 누구보다 더 크기 때문에 버티는 사람. 끝이 뻔히 보이지만, 나를 믿고 함께 해준 동료들이 고맙기에 모두가 떠날 때까지 자신의 책무를 다하려는 리더들도 몇몇은 존재한다. 작은 조직은 정부지원사업이나 다른 기업들과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많다. 뻔히 끝은 보이지만 적어도 책임감 있는 결과물을 내고 사업을 마무리하려는 책임감 있는 경영진도 있다. 물론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배에서 서둘러 탈출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고 그 누구도 이러한 개인을 탓할 수 없다. 다만 같은 시기에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코 다른 배에 탑승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위기는 어느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큰 배에 타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도 없다. 그들은 배가 침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꺼이 일부 선원들을 희생시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그저 노만 저을 것이 아니라 우리 배가 잘 나아가고 있는지, 나는 잘하고 있는지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조직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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