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를 따라간 사람

by 여운
2021년 10월 말 갑작스러운 심장통증으로 관상동맥 우회수술을 받았습니다.
현재 건강히 회복 중에 있으며
이 글은 그 당시 기록과 그림, 기억을 더듬어 새롭게 쓰는 글입니다.





30일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가라앉은 아침이 옵니다.

입원 후 처음으로 링거줄을 뺀 덕에

지난밤 오랜만에 느긋하게 즐긴 샤워 탓인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아침이 무척 힘듭니다.

구름 사이 해가 뜨는 시늉만 하더니만 그것으로 그만.

온라인 새벽기도도 아침 간호사의 방문과 겹치는 덕에 간신히 설교시간에 접속했습니다.

아침식사 역시 입맛이 없습니다.

심장내과 담당의사의 교체 소식과 함께 별다른 치료 없이 수술 날까지

시간만 보내야만 한다는 소식 역시 무겁습니다.

절대안정


'관상동맥 우회수술'과 '스텐트 시술'사이에서 엄청난 고민을 하던 며칠 전,

첫 담당의는 무책임으로 일관했습니다.

기계적으로 수술과 시술의 장단점에 대한 설명을 해 줄 뿐

그 어떤 결정에도 자신이 영향을 끼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과연 내 생명을 맡겨도 될 진짜 의사 인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오늘 아침의 이 무거움은

수술과 시술 사이의 힘든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며칠의 시간을 통해 마음의 안정이 밀려오자 ,

도움이 절실한 시기의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보다 담당의는 자신의 책임관계에만 집중하며 오히려 환자를 불안으로 몰아넣었던

기억이 살아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보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던 그 장면의 담당의사의 말 한마디는

위로의 힘, 새로운 생명의 의지를 줍니다.

그러나, 그전 담당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환자의 생명보다 자신의 책임회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면담 때마다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와이프와 함께 병원 테라스로 바람 쐬러 나섭니다.

내가 실려왔던 응급실 입구가 소란합니다.


잊을만하면 들리는 "파랑새"멘트는 생과 사가 멀리 있지 않음을 끝없이 상기시켜 줍니다.

병실로 올라오던 첫날 만났던 옆 병상의 환자는 며칠째 고통 속에 신음하다

밤새 파랑새가 되어 가족들의 곁을 떠났습니다.

병실에 돌아오자 장례절차를 논의하는 자녀들의 목소리가 커튼 너머 들리고

나 역시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병실에서의 첫날밤, 나 역시 통증으로 고통받던 그 시간, 옆 침상의 고통의 찬 신음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밤새 고통에 환청이 들리는지 자꾸만 내쪽 커튼을 젖히고 나를 지인으로 착각하며 불러 너무나 힘든 밤을 보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며칠간 그의 고통과 가족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그의 회복과 고통의 완화를 기도했습니다.

공감하고 같이 느낀다는 것 말과 행동이 결코 간단하게 일치하지 않음을 또 깨닫습니다.

파랑새를 따라간 사람. 그의 영원한 안식을 빌어봅니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오후 내내 잔뜩 내려앉은 병실 유리창에 회색 하늘을 보며 끝없는 심연처럼 가라앉아 잠을 잡니다. 끝없이 자는 잠


CT촬영장에서 스피커로 들리 던 " 숨 멈추세요. 숨 쉬세요"라는 음성.

숨을 멈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숨을 쉬는 일상이 얼마나 은혜인지

주여 저를 숨 쉬게 하시고, 숨 쉴 때마다 주님의 끝없는 은혜를 주소서 기도합니다.


공연을 갔던 작은딸은 일정을 착각해 헛걸음을 하고 돌아온다 합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큰딸은 내일 아빠 보러 내려온다고 합니다. 애써 오지 말라 했지만, 내심 오늘도 종일

큰딸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오후 들어 혈압이 다시 좋아졌다. 심연에 가라앉은 기분을 건져 올리려 온몸을 흔들어 본다.


작은딸에게 병원식사를 먹지 말고 기다리라 연락이 온다. 양손 가득 싸들고 작은딸이 나타났다.

공연이 취소된 덕에 집으로 일찍 귀가해서 병원에 넣어줄 온갖 반찬을 만들어서 나타난 것이다.

따뜻한 마음이 담긴 식사. 심연에서부터 내 마음이 떠오른다. 따뜻하게


고난은 우리를 단련시키고 하나 되게 하신다.




31일

물먹은 솜 같은 아침이 왔다. 별다른 처방 없이 오전 내 침상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이어폰을 낀 채 침상에 누워 주일 예배에 접속했다.

자꾸만 가라앉는 의식과 함께 드리는 예배


비몽사몽간에 내 병실 내 침상 머리맡에 앉아 목사님이 내게 설교말씀을 하신다.

녹색의 의료복 같은 옷을 입고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으로 내 머리에 안수하며 설교를 하셨다.

뜨겁고 강한 말씀이 지나가고

'목사님이 주일 말씀을 이곳에서 하시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과 함께 설교말씀이 내게 와서 꽂힌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머릿속에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잠에서 깨자 마침내 몸이 가벼워진다.

아까운 가을 햇살이 창문에 드리우고 와이프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행복


큰딸이 서울에서 왔다. 엄마 읽을거리랑 양손 가득 바리바리 싸들고 아빠를 찾아왔다.

행복한 밤. 감사 한밤

시간이 빨리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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