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 것은 기다리 던 것이 아닙니다
내 기다림의 끝에 아직도 서있을 것들을 기대하며
안도현의 '고래를 기다리며' 그리고
나희덕의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를 읽습니다.
고래를 기다리며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 안도현,『바닷가 우체국』(문학동네, 1999)
안도현은 '고래를 기다리며'라는 시를 통해
참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기다린다고 모든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란 것조차
알면서도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는 고래는
바로 그와 함께 언제나 숨 쉬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기다림의 시작은 설렘이고 그 끝은 지침입니다.
기다림에서 지침까지 그 긴 시간의 사이
작가는 바다를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바다에 있었고 바다를 바라보았지만
기다리는 사이 파도를 보았고 그 파도의 움직임을 따라
어깨를 들썩이는 바다를 보았습니다.
기다림은 사색을 가져다줍니다.
사색은 새로운 발견을 가져다줍니다,
기다림은 사색을
사색은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합니다.
지침이 깊어질수록 새로운 발견에 가까이 서 있는지 모릅니다
.
기다림은 생각입니다.
당신을 기다리며 당신을 생각하고
그 기다림이 미치는 곳까지 당신을 생각합니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나희덕
그들도 사라진 것인가
한번도 노선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모범 운전사들
정해진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에서,
교대 시간과 교대 시간 사이에서,
못다 핀 새벽잠과 새벽잠 사이에서,
가던 길로만 가고
돌아오던 길로 늘 돌아오던
그들마저 길을 잃은 것인가
규칙적인 것일수록 믿을 게 못된다.
기다릴 것 없이 그냥 걸어가자,
노선도 한 개뿐인 이런 동네에서
파업은 무슨 파업이냐,
돌아서는 사람들 저렇게도 많은데
어두워오는 거리, 흙먼지 속에 남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가 절망의 뿌리를 캐러 떠날 때
홀로 기다린다고 오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는 것마다
돌아오는 것마다
완전한 어떤 것은 아니다
절름거리며 돌아오는 그의 바퀴와
깨진 유리창, 구멍 뚫린 눈을 보아라
빈 버스 가득히 겨울바람을 담고
고드름을 무성하게 매어단 채 달려오는
동굴 같은 그의 가슴을 보아라
- 나희덕,『뿌리에게』(창작과비평사, 1991)
나희덕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더더욱 그 기다리는 것마다 돌아온 것마다
완전한 어떤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긴 기다림
오지 않은 것 같은 것이 돌아올 때
비록, 깨지고, 구멍 뚫린 상처 투성이의 것이지만
동굴 같은 가슴을 가지고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던 것이 아닙니다.
기다리던 것은 새로운 것이 되어 돌아옵니다.
안도현의 지침과
나희덕의 깨지고 구멍 뚫리고 절름거리는 시간을 지나
바다는 고래가 되고
망가진 것들은 동굴 같은 가슴으로 되돌아온다고 합니다
내 곁에 늘 함께 하는 고래를 발견하는 기다림
오지 않는 것들이 깨지고 구멍 날 때까지
혼자라도 기다리는다 만나게 되는 동굴 같은 가슴
기다리의 끝에 나를 기다리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다림
내 기다림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