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을사년을 맞이하는 을사년생의 신년 기원
올해는 을사년입니다.
120년 전 1905년 에는 을사늑약이 있었고
60년 전에는 내가 태어났습니다.
바로 그 1965년은 "한일협정"이 박정희에 의해 체결된 해입니다.
을사년과 매국, 친일은 역사가 꽤 깊나 봅니다.
임금 왕자를 손바닥에 쓰고 우리에게 나타난 자는
2025년이 되면 운이 열린다는 무속에 기대
지금도 버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2025년이 바로 을사년입니다.
친일파가 득세하던 이 정부를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2025년이 또다시 친일의 역사로 남는 해가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을사년이 일본과 엮이는 해가 되기 않기를
2024년을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한 해가 아니라
계엄령이 다시 돌아온 해로 기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노벨문학상이 우리나라 그것도 동시대 작가에게 돌아갔다는
전무후무한 기쁨과 자긍심을 나눌 사이도 없이
그가 감정을 추스르고 추슬러 빛나는 정수로 만들어
객관적인 사건으로 담담히 써 내려갔던 그때의 아픈 이야기가
불쑥 45년이 지나 다시 되돌아 우리에게 나타날 줄
한강작가도 나도 몰랐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바로 한국 현대사의 공포와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돌리는 위로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예술은 결코 도피처가 아닙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시인은 잠수함 속의 토끼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1처대전 당시 부족했던 기술력으로 인해 잠수함 속의 산소농도를 측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잠수함의 수병들은 토끼를 잠수함에 태웠습니다.
토끼가 죽거나 시름시름 앓게 되면 함 내 산소가 바닥에 이르렀다는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습니다.
시대의 혼란 앞에 항상 예술가들은 맨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시인들이 그러했고, 80년대 예술가들이 그러했습니다.
계엄과 비상사태, 불심검문과 영장 없는 체포와 구속
강제입영과 의문사가 있던 그 시절
예술가들은 호화로운 양장 본에 호흡이 긴 소설조차 읽지도 쓰지 못하고
몇 줄의 짧은 시로 시대에 항거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육사가 그러하였고 만해 한용운, 윤동주가 그러했습니다.
박정희군사독재정권, 그리고 전두환의 신군부에 항거하며
김남주시인은 "학살"의 밤을 써 내려갔으며, 감옥에서 "자유"를 노래했습니다.
한강의 글들이 또다시 시대의 제일 앞에 서는
슬픈 아이러니가 찾아왔습니다.
해방 이후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
그들은 80년 동안을 버티고 버텨 이 정부 들어 마치 바퀴벌레와도 같이
독립기념관의 관장으로 역사학회의백주 대낮에 친일을 당당해하며
역사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홍범도장군과 김좌진장군을 지우더니 드디어 안중근장군까지 역사에서 지우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백선엽을 비롯한 친일파들을 역사의 전면으로
국가유공자로 바꾸려는 시도는 이 정부 동안 계속 시도되었습니다,
또다시 을사년
어쩌면 잘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백골단, 서북청년회가 이 시대에 또다시 등장한 오늘
반민특위를 습격하고
80년 동안 독재자들에 기생하며
부를 유지하며 생명을 연장했던 그들이
드디어 역사의 전면으로 나왔습니다.
"친일이 어때서......" 라며
오히려 떳떳이 얼굴 내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정권은 친일파들을 전면으로 끌어올려
무엇이 매국이고 무엇이 반민족, 반민주인지
구별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민족정기를 잡아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을 정리하는 새벽,
한남동 대통령관저에는 윤석열체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탄핵과 구속이 이루어지고
국가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기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