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신앙 묵상글입니다
2025.7.2 묵상
본문말씀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5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1)피난처시로다 (셀라)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1)피난처시로다 (셀라)
시편 46편 1 ~ 11
오늘 본문은 출석하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일대일제자훈련 양육자 훈련 과정에서 함께 묵상한 본문입니다.
짧은 시간 함께 주어진 말씀으로 QT를 나누었습니다.
짧은 시간 스쳐간 말씀을 붙들고 집으로 돌아와 말씀 속으로 더 들어가 봅니다.
너무나 유명한 시편 46편입니다.
피난처라는 단어가 본문의 앞과 뒤 수미상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본문의 중간에도 다시 한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라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나의 앞에 나의 뒤에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은 보호자 세 명이
나와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고난을 만났을 때 두려움을 이기고 힘이 되는 대표적인 말씀 중 하나입니다.
읽는 것 자체로 은혜가 됩니다.
그렇지만 본문을 읽다 보니
한 구절에서 딱 막힙니다.
"나뉘어 흘러"
나뉘다는 말은 대게 부정적인 의미이기 쉽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는 나뉘는 것에 대한 선천적 트라우마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념으로 남북이 나뉘었고, 가족들이 이산하는 아픔을 겪었고
지역감정으로 나뉘었고, 이념으로 세대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라는 본문 대신에
"한 시내가 있어 하나로 흘러"라는 말씀이
더 가슴에 와닿고 자연스러운 전개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에게 속한 성에,
떠들며 흔들리던 뭇 나라에도 공평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뭇 나라는 그 은혜를 알지 못한다"로 본문을 이해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에 속한 상태에도 세상에 속한 상태에도 언제나 내게 흘러내리는 은혜
다시 한번 읽어 봅니다
여러 갈래로 라는 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시내가 있어 (여러 갈래로) 나뉘어 흘러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한 시내가 넓은 지역을 골고루 적시려면
크고 넓은 한 줄기로 흘러가는 것보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 흘러갈 때 더 많은 곳 더 필요한 곳까지 물은 비로소 도달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낮은 곳으로 임하십니다.
하나님은 세밀하신 분입니다.
자신의 한 몸을 여러 갈래로 나뉘어 우리에게 직접 흘러오셨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나뉘어 흘러가면
한 시내의 수량도 나뉘어 내게 오는 몫이 적어질까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내는 그러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나누면 나눌수록 커집니다.
한 시내는 하나님 자신이요 무한하신 은혜입니다.
물은 땅의 형태를 따라 흘러내립니다.
마치 우리의 각자의 그릇의 형태에 따라 우리에게 알맞게 흘러내립니다
나의 처지를 아시고 내게 필요한 모습으로 흘러내리십니다
골고루 낮은 곳까지 친히 나뉘어 흘러내리는 하나님의 은혜
오늘도 내게 필요한 모양으로 흘러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하여 내가 선 곳 그 어디에나 앞과 뒤 내 손을 붙잡고 계신 살아계신 피난처를
나는 오늘도 누립니다.
나뉘어 흘러내리는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