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총

by 여운


“언제부터 우리는 예수께 금관을 씌워 권력의 보좌에 앉혔는가?”
한국교회의 80년 역사를 회개의 눈으로 추적합니다.
십자가의 길 대신 권력과 번영의 길을 걸어온 교회의 죄를 고백하며,
금관을 벗어던지고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는 여정을 함께 시작합니다.


제1부 1회는

복음 대신 총을 든 교회의 첫 선택을 성찰합니다.

왜 교회는 해방 후, 십자가 대신 총을 들었는가?라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1화 십자가와 총 – 해방 직후 권력과 교회의 결탁

“네 칼을 다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할 것이다.” (마태복음 26:52)




복음의 본질은 사랑과 희생입니다. 그러나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교회는 예수께서 경고하신 바로 그 길을 택했습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희미해지고, 총과 반공 이념이라는 새로운 신앙이 교회를 집어삼켰습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5916805108540557.jpg 1948년 5월 31일 국회 개원식날 국회 의사당 앞에서 소련 철수를 요구하며 시위하던 서북청년단 (출처ㅣ:위키미디어)


복음 대신 반공의 강단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교회의 강단은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장소이기를 멈추었습니다. 대신, 반공 이념을 설파하는 정치적 연설의 무대로 변질되었습니다. 목회자들은 예수의 사랑 대신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를 외쳤습니다. 좌익은 사탄으로 규정되었고, 반공은 곧 신앙이라는 거짓된 논리가 한국교회 전체를 휩쓸었습니다.

선과 악을 극명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복음의 포용력을 앗아갔습니다. 십자가의 용서 대신 심판의 칼날을 들었고, 예수의 온유함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교회가 이념을 복음으로 둔갑시킨 그 순간, 한국교회는 이미 십자가를 등진 것입니다.


성경을 든 손, 총을 든 청년들

가장 끔찍한 비극은 바로 이념에 오염된 청년들의 손에서 벌어졌습니다. 일부 교회 청년들은 ‘서북청년회’라는 반공 단체를 조직했습니다. 그들은 ‘멸공’이라는 구호 아래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이들의 죄악은 제주 4·3 사건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서북청년회는 반공이라는 명분 아래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웠습니다. 이는 성경을 든 손으로 총을 쏘아 선량한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명백한 죄악이었습니다. 복음의 옷을 입은 증오의 이념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예수의 사랑과 희생을 따라야 할 청년들이, 자신의 신앙을 살인과 학살의 명분으로 쓴 것입니다.


교회가 학살에 면죄부를 주다

그들의 죄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벌어진 ‘보도연맹 학살’은 교회의 그림자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보도연맹은 공산주의 전향자들을 계몽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었지만, 전쟁이 터지자 이들은 ‘예비검속’이라는 이름 아래 무자비하게 학살당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일부 교회가 이 학살의 공범 역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집결지를 제공했고, 교인들이 명단 작성에 협력했습니다. 수십만 명의 무고한 국민이 학살당하는 데 복음의 이름이 사용된 것입니다. 이는 복음 대신 학살에 면죄부를 준, 한국교회의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이념은 언제나 학살의 공범이었다

이러한 비극은 한국교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사회주의 정권에 협력하며 반정부 목회자들의 숙청을 정당화했습니다. 남미에서는 ‘콘도르 작전’ 아래 교회가 군사 독재 정권의 학살을 묵인하고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줍니다. 이념을 복음으로 포장한 종교는 언제나 학살의 공범이었습니다.


복음을 배신한 순간, 타락이 시작되었다

한국교회는 복음의 본질인 사랑과 희생을 배신하고, 이념을 선택한 순간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십자가를 들고 가야 할 길에서 총을 들었고, 그 결과 수많은 생명을 짓밟았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여전히 이념 정치에 기대며 세속의 권력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때의 원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비극적인 역사를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실수가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잃게 만든 결정적인 죄악입니다.






다음 회 예고

9월 9일 화요일 연재됩니다

제1부 : 피로 시작 된 한국교회

2화 : 한경직 목사와 서북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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