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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한 바탕 거리

하갈의 울부짖음

by 여운

이 글은 신앙 묵상 글입니다.

2025년 9월 6일 '리딩지저스 통독' 중 오늘의 묵상



본문말씀

[창21:14-18]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 하나님이 그 어린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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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의 울부짖음


하갈은 화살 한바탕 거리에 앉아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에 직면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들을 버려두고 떠날 수 도 없고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화살 한바탕 거리에 앉아' 있습니다

외면도 직면도 할 수 없는 절대적 불가항력의 상태

일어서지도 못하는 절대적 절망의 상태에 하갈은 있습니다.


때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 멀찍이 떨어져 애써 외면하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 모습과도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주저앉아 있는 바로 그곳은

어쩌면 나의 "화살 한바탕 거리"는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갈의 울부짖음이 아닌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울부짖음을 들은 것이 아니라

아이의 숨 넘어가는 작디작은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어쩌면, 하갈은 '화살 한바탕 거리'에 떨어져 앉은 것도

그녀의 결정이었을 것이며 불가항력의 상태이지만

주저앉아 있는 것 역시 그녀의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 이스마엘에게는

화살 한바탕 거리도 울부짖을 선택조차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가장자리, 어두운 곳, 주변부의 소리에 귀 기울이십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약속의 주체인 이스마엘에게 머물렀고 절대적으로

무력한 아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셨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한민족을 이루게 하시는 축복을 베푸십니다,


우리의 공동체는 활 한바탕 거리에서 죽음을 두고 울부짖는 여인의 울부짖음을 듣지 못합니다.

하물면, 죽어가는 어린아이의 숨소리를 들을 리 없습니다.

우리의 교회가 사회적 약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갈에게 떡과 물 한가죽부대를 메어주고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버렸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스마엘의 숨넘어가는 소리를 듣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이슬람과의 갈등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 내 이슬람 사원의 건립들 두고 갈등이 높습니다.

세계사적인 이슬람 민족과의 적대적 갈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한민족을 이루어 세계사 속에서

기독교외 적대적 갈등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영원한 갈등의 씨앗이 될 하갈과 이스마엘을 구하시고 복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어쩌면 현재 이슬람과의 적대적 대립과 갈등은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된 선민의식에 기원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화해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구하신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 어디까지 미치는가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선택받은 이삭의 목소리만 아니라 버려진 이스마엘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갈등은 인간의 역사 속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은 극단적 선민사상과 합하여 혐오를 낳기까지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소외되고 가난한 자 약한 자의 이웃이 되고자 하신

하나님의 긍휼의 시선입니다


내게도 '화살 한 바탕 거리'에 홀로 남겨진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숨소리를 외면하고, 나의 고통에만 집중했던 지난날들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은 나의 울음이 아닌,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이들의 작은 신음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숨소리가 바로 내가 귀 기울여야 할 기도의 제목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늘 가장 낮은 곳을 향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긍휼히 나의 삶 속에도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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