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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함께 듣고 함께 읽는 기쁨

리딩지저스, 공동체 성경통독 1독을 마치며

by 여운



갓피플 성경앱에서 교회 지체들과 함께
공동체성경읽기를 함께 진행하고 1회 통독을 마쳤습니다.
이 글은 그 감상을 적은 글입니다.




함께 듣고, 함께 읽는 기쁨


어찌어찌 성경완독을 했습니다. 나 혼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 읽어라, 들어라" 말씀하신 카톡방의 공동체들의 독려와 지지가 없었다면 나의 게으름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를 위해 함께 읽어주고, 기다려 주고, 참아 준, 그리고 함께한 신앙의 지체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새로운 듣기'를 기대하며


펜과 종이가 전부였던 시대에서 키보드와 모니터를 거쳐, 이제는 AI와 함께 글을 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도구가 바뀌면서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졌습니다. 종이 위를 느리게 흐르던 펜 끝이 주던 깊은 사유의 시간은 줄어들고, 화면이 주는 편리함은 늘어났습니다 성경 앱을 켜고, 오디오를 들으며 눈으로 스크롤하는 일이 너무나 쉬워졌지만, 말씀 앞에 마음을 가다듬고 예의를 갖추는 시간은 오히려 희미해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통독은 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오늘 읽어야 할 분량을 '해치웠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하는 요식행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말씀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 채 흘려보냈던 순간들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읽기, 듣기, 쓰기, 그리고 시대의 경계


1년의 성경 통독 여정을 통해 저는 읽기, 듣기, 쓰기가 단순히 다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시대와 사람을 나누는 중요한 경계였습니다.. 과거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듣기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들을 때마다 마음에 새기고 기억해야 했기에, 듣는다는 것은 곧 생명이자 깊은 신앙의 경건한 행위였습니다.


문자를 익힌 사람들은 읽기라는 특별한 힘을 얻어 시간을 넘어 말씀을 반복해서 접할 수 있었고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쓰기를 통해 생각을 온전히 정리하며,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듣고, 읽고, 쓰는 것을 모두 누리는 지금 우리는 듣는 것의 힘, 읽는 것의 힘, 쓰는 것의 힘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시대에 사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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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앞에 ‘전심으로 귀 기울인’ 사람들


성경 속에는 도구가 없던 시절,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주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말씀을 수동적으로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요시야 왕은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모든 백성이 모인 자리에서 직접 낭독했습니다(왕하 23:2). 이는 말씀이 단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임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동일한 말씀을 같은 시간에 함께 들으며 거룩한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군중에게 말씀하셨고, 그 가운데 개인들은 말씀에 전심으로 귀 기울여 응답했습니다. 베다니 마리아는 바쁜 와중에도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고, 삭개오는 부르심을 듣자 즉시 응답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움직였으며 , 바디매오는 군중의 소음 속에서도 예수님의 발걸음을 듣고 부르짖었습니다. 이들은 그저 우연히 들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공동체를 향한 말씀 중에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귀 기울인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초대교회 공동체에서도 이어져, 회당과 가정에서 말씀을 공적으로 낭독하며 믿음을 전했습니다.


인쇄술과 번역, 교육의 확산으로 성경이 개인의 손에 들어오게 되면서 말씀에 대한 접근은 해방이었지만, 동시에 책임이기도 했습니다..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곧 깊이 읽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주의하라" (누가복음 8장 18절). 이는 진정한 듣기가 단순히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귀 기울이고 함께 말씀 앞에 서는 것 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함께 읽는다는 것, 함께 듣는다는 것


오늘날 우리는 듣고, 읽고, 쉽게 기록할 수 있지만, 말씀은 마음속에서 잘 숙성되지 않습니다. 화면의 속도가 우리의 생각 호흡을 앞지르고, 수많은 알림과 정보는 우리의 분별을 방해합니다. 펜으로 한 줄 한 줄 말씀을 옮겨 적고, 성경책을 직접 펴서 그 글자들을 깊이 곱씹으며 묵상하던 시간과 비교할 때, 간편한 듣기만으로 진행된 이번 통독은 그 깊이와 넓이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도구 자체가 아니라, 도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번 성경 통독은 제게 특별했습니다.

요식행위처럼 "들어 치우는" 시간이 반복되었지만, 이 통독 과정이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읽고, 함께 듣는 여정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같은 본문을 같은 시간에 읽고 듣는 단순한 동시성이 우리 사이에 깊은 연대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제가 묵상한 말씀과 옆 지체가 붙잡은 말씀이 겹칠 때,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깨달음을 넘어 그날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혼자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구절이, 누군가의 나눔을 통해 제 삶의 구체적인 도전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짧게 나누는 묵상의 말씀도 얼마나 힘이 되고 기도가 되는지 모릅니다.





새로운 듣기, 그러나 전혀 새롭지 않은 본질


우리는 오디오 성경, 앱, 심지어 AI까지 활용하며 말씀을 접합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 속에서 말씀의 무게가 가벼워질 수 있다는 위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통독을 통해 확신합니다. 새로운 듣기의 본질은 결코 새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성경 속에서, 그리고 신앙의 역사 속에서 이미 보여주신 길, 곧 함께 듣는 자리의 회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장 20절)


이번 통독의 가장 큰 의미는 완독이 아니라, 동일한 말씀을 함께 나누며 형성된 공동체적 유대였습니다. 간편한 도구에 기대어 요식적으로 말씀을 흘려보냈던 저의 아쉬운 모습이, 함께하는 공동체의 힘을 통해 오히려 성경적인 '함께 들음'의 원리로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여전히 살아 있고, 우리는 그것을 함께 들을 때 더욱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이 행복한 여정을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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