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제단이 된 기도회

국가조찬기도회의 변질

by 여운


“언제부터 우리는 예수께 금관을 씌워 권력의 보좌에 앉혔는가?”
한국교회의 80년 역사를 회개의 눈으로 추적합니다.
십자가의 길 대신 권력과 번영의 길을 걸어온 교회의 죄를 고백하며,
금관을 벗어던지고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는 여정을 함께 시작합니다.




권력의 제단이 된 기도

국가조찬기도회의 변질

4화 : 권력의 제단이 된 기도회

국가조찬기도회의 변질


십자가가 국방부 깃발로 바뀌던 순간, 교회는 이념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3화에서 우리는 한국전쟁이라는 격랑 속에서 반공이 복음을 대체하고, 교회의 강단이 증오의 언어를 선포하며 국가 권력과 구조적으로 유착하는 '제도화'의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길의 끝에 놓인 또 다른 상징적인 장소를 마주합니다. 바로 '국가조찬기도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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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기도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극히 사적인 대화이자, 동시에 공동체가 서로의 고통을 나누며 회개와 중보를 간구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 신성한 기도의 자리를 국가 권력과 공식적으로 손을 잡는 '결탁'의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복음의 순수성이 권력의 제단 위에서 어떻게 타협되고 변질되었는지, 우리는 국가조찬기도회의 역사를 통해 통렬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도가 권력의 도구가 되다


국가조찬기도회는 1966년 박정희 정권 시기, 이승만 시절의 비공식 모임들을 제도화하며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정권과 교회의 유착을 보여준 것은 군사정권 시기였습니다. 당시 목회자들의 기도는 성경적 본질을 벗어나 권력자를 찬양하고 정권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언어로 채워졌습니다.


1973년 제6회 대통령조찬기도회에서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김준곤 목사는 "10월 유신은 실로 세계 정신사적 새 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의 설교는 군사독재를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시키는 위험한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3화에서 다루었던 '멸공은 곧 복음'이라는 등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독재는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비뚤어진 신학이 공교회의 강단에서 공공연히 선포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 정점은 1980년 8월 6일 열린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광주학살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 목회자들은 전두환을 성경 속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 장군'에 비유하며 그의 등장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찬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이 땅에 사회악을 제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공공연히 드려졌습니다. 기도가 본래 하나님께 바치는 고백과 회개의 언어였다면, 이 순간 기도는 권력의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의례적 선언으로 전락했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얻었는가?


국가조찬기도회는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종교적 의례였다는 비판이 언론과 교회 개혁 단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목회자들의 찬양 발언들은 공중파로 중계되며 국민들에게 각인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정교유착의 핵심 고리'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지도자들은 이 자리에서 무엇을 얻었을까요? 그들은 군사독재 정권의 핵심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치적 명성과 영향력을 얻었고, 교세 확장을 위한 제도적 특혜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목회의 인기와 교세 확장을 택하는 순간, 복음의 순수성이라는 더 값진 가치는 훼손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섬기러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권력의 제단 앞에서 잊힌 지 오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권력의 편에 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한국교회가 권력의 제단 앞에 무릎 꿇었던 것은 아닙니다. 권력의 금관이 아닌, 복음이 요구하는 가시관을 선택한 용기 있는 증언자들이 있었습니다. 유신과 군사독재 시대 전반에 걸쳐, 이들은 시대의 폭력에 침묵하지 않고, 신학적·윤리적 양심을 지키며 금관의 교회와는 다른 길을 걸어갔습니다.


김재준 목사는 권위주의적 교권에 저항하고 신학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 대한신학교(현 한신대학교)를 설립하며 한국교회의 신학적 저항을 이끌었습니다. 신학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던 그의 고투는, 교회의 지성이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예언자적 역할을 해야 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함석헌 선생은 '씨알 사상'을 통해 비폭력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종교가 권력의 울타리가 아닌 민중의 해방을 위한 십자가의 길임을 증언했습니다. 암울했던 시대 속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또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들은 교단과 교파를 넘어, 신앙의 본질이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이 걸어간 길은, 이념과 권력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복음이 요구하는 '다른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가시관 신앙의 절정은 공산당에게 두 아들을 잃고도 그들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음으로써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복음의 본질이 이념의 경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주었던 손양원 목사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의 용서는 단순한 반공 서사가 아니라, 복음적 사랑이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꺼지지 않는 진정한 빛임을 증명합니다.


기도의 제단, 권력의 제단


이 연재는 2화(서북청년회), 3화(한국전쟁과 제도화)를 거쳐 4화(국가조찬기도회)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가 어떻게 십자가의 복음을 버리고 금관의 왕관을 탐해왔는지 돌아보았습니다. 복음의 자리에 이념을, 기도의 자리에 권력을 앉히며 교회는 스스로의 빛을 잃고 소금이 맛을 잃어갔습니다.



십자가의 제단은 하나님께만 속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기도는 권력의 면죄부로 변질되었고, 복음은 정권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시관의 길을 택한 소수의 증언자들은, 교회가 여전히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음 회 예고

9월 19일 금요일 연재됩니다

제1부 : 피로 시작 된 한국교회

5화 : 부흥과 번영의 달콤한 독 - 대형교회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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