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교회의 성장과 제도적 타락
“언제부터 우리는 예수께 금관을 씌워 권력의 보좌에 앉혔는가?”
한국교회의 80년 역사를 회개의 눈으로 추적합니다.
십자가의 길 대신 권력과 번영의 길을 걸어온 교회의 죄를 고백하며,
금관을 벗어던지고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는 여정을 함께 시작합니다.
3화에서 우리는 한국교회가 이념에 취해 십자가를 국방부 깃발로 바꾸는 비극을 목격했습니다. 4화에서는 그 길의 끝에 놓인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해, 거룩한 기도의 제단이 어떻게 권력의 제단으로 변질되었는지 통렬히 돌아보았습니다. 이 모든 역사적 타락의 서사 속에서, 한편으로는 거대한 역설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교회 부흥'이라는 기적적인 현상이었습니다.
1950년대의 폐허와 60년대의 절대적 빈곤 위에서 한국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새벽부터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 밤샘 부흥회의 뜨거운 열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성장'은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믿음이 한국교회 전체를 뒤덮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그 폭발적인 성장이 정말 온전한 의미의 축복이었을까요? 아니면, 거룩한 옷을 입고 다가온 타락의 서곡은 아니었을까요? 이 연재의 다섯 번째 이야기, **부흥인가, 타락인가?**에 대한 질문에 마주 서고자 합니다.
한국교회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흐름을 타고 거대한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고단한 삶을 살던 도시 이주민들에게 교회는 영적 안식처이자, 서로의 고향이 되어주는 공동체였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기도회, 지칠 줄 모르던 부흥회와 철야기도는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영적 동력이 되었고, 교인들은 이 열정 속에서 구원의 감격과 희망을 붙잡았습니다.
이러한 부흥의 원동력은 국내적 요인뿐만 아니라, 해외로부터의 영향도 컸습니다. 1970년대 미국 복음주의의 물결이 한국에 상륙하면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대규모 전도대회는 한국교회 성장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1973년 여의도 광장에 모인 백만 명이 넘는 인파는 ‘성장’과 ‘영혼 구원’이 동일시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교회가 세계 선교의 새로운 부흥지로 주목받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장의 이면에는 군사정권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얻어낸 제도적 특혜가 있었습니다. 반공의 첨병 역할을 자처하며 권력과 유착했던 교회는, 정권의 정치적 후원 아래 교육기관, 복지재단, 병원 등을 설립하며 몸집을 불렸습니다. 이는 순수한 신앙의 열정과 세상의 제도가 결합해 만든 기형적 성장이었습니다.
성장이 곧 축복이라는 믿음은, 교회 내부에 뿌리 깊은 제도적 타락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교인 수는 곧 하나님의 축복의 척도가 되었고, 담임목사의 권위는 절대적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목사직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세습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고, 권위주의적 목회 구조가 공고화되었습니다. 복음의 권위보다 제도의 권위가 앞섰던 시대, 교회는 건물의 규모와 화려함에 집착하며 교회를 건물 중심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영락교회입니다. 폭발적 성장의 모델이었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창립자의 아들을 중심으로 한 세습과 재정 문제로 오랜 법적 공방을 겪었고, 영락교회 역시 창립 목사의 아들이 목사직을 세습하면서 교회 내분 사태를 겪었습니다. 이 사건들은 대형교회들이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권위주의와 제도의 늪에 빠졌음을 보여주었고, 한국교회가 신뢰를 잃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장의 열매는 달콤했지만, 그 열매 안에는 쓴 뿌리가 깊이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세습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교회 개혁을 위한 자정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교회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자본의 문제를 동반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마태복음 6:24)은 잊힌 지 오래였습니다. 미국에서 들어온 번영복음은 한국의 기복신앙적 토양에서 폭발적으로 번성했습니다.
번영복음은 원래 미국의 오순절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하나님이 신자에게 물질적 부와 건강을 약속한다는 신학적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삶의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서민들에게, ‘헌금과 봉사를 통해 물질적 축복을 얻는다’는 메시지는 강력한 구원의 약속처럼 들렸습니다. 헌금과 봉사를 통해 물질적 축복을 약속하는 설교가 강단에 울려 퍼졌고, 교회는 끊임없이 더 큰 건물과 더 많은 교인을 요구하는 거대 기업처럼 변모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자본과 권력이 합리화되었고, 교인들의 헌금은 교회의 재정을 자본화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위한 것이라 외쳤지만, 사실은 교권의 확장과 목회자 개인의 영달을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큰 교회의 화려한 전당 뒤에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예수의 십자가, 가시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작은 교회들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도시산업선교는 공단 지역의 노동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인권과 삶을 위한 투쟁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복음이 단순히 개인의 구원을 넘어 사회적 정의와 해방을 위한 것임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민중신학이라는 새로운 신학적 흐름은 유신독재와 전두환 정권의 폭정 속에 억압받는 민중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며 그들과 동행했으며, 문익환이나 안병무와 같은 신학자들은 권력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위해 투신했습니다. 이들은 권력과 자본에 타협하지 않고, 오직 복음의 본질에 충실했던 이들의 존재는, 한국교회 부흥의 역사가 단순히 타락의 서사로만 채워지지 않았음을 증언합니다.
이러한 같은 하나님 같은 예수님을 섬기는 교회와 목회자 기독교인들은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들이 걸어간 길 중 어떤 것이 교회의 본질인가 묻습니다.
과거의 부흥이 오늘날 세습과 재정 비리, 신뢰 상실이라는 위기의 뿌리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성장이 복음의 증거라 믿고, 숫자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권위의 제단을 쌓으며 십자가의 섬김을 잊었습니다. 물질의 풍요를 당신의 축복이라 믿으며, 정작 우리의 영혼은 가난하게 두었습니다.
이제 부흥의 이름으로 쌓아 올린 이 모든 거짓된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다시금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소서.
9월 23일 화요일 연재됩니다
제2부 : 권력과 교회의 결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