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시대, 교회의 굴종
“언제부터 우리는 예수께 금관을 씌워 권력의 보좌에 앉혔는가?”
한국교회의 80년 역사를 회개의 눈으로 추적합니다.
십자가의 길 대신 권력과 번영의 길을 걸어온 교회의 죄를 고백하며,
금관을 벗어던지고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는 여정을 함께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전 이야기들에서 한국교회가 이념에 취하고 권력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반공'은 생존의 논리가 되었고, 국가는 교회의 영적 권위에 기댔습니다. 그러나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종신 집권을 목적으로 단행한 유신헌법은 교회를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세웠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이 억압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시대 속에서, 교회의 침묵은 더 이상 '생존'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발적 굴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예언자적 저항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시험대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주류는 유신 체제 앞에서 침묵을 택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인 협력의 길을 걸었습니다. 유신은 단순히 정치 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독재를 합리화하는 거대한 이념이었습니다. 이 시기, 국가와 교회의 '결혼'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1973년 5월 1일 대통령조찬기도회에서 김준곤 목사는 유신체제에 대해 “10월 유신은 실로 세계 정신사적 새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이 발언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독재를 정당화하는 위험한 신학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당시 조용기 목사는 3선 개헌을 지지하며 정권에 협력했고, 국가조찬기도회는 권력자를 찬양하는 공식적 의례로 제도화되었습니다. 거룩한 기도의 언어는 권력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정치적 도구로 둔갑했습니다.
이러한 협력의 이면에는 교회가 얻은 실질적인 보상과 특혜가 있었습니다.
정부와 언론의 전폭적 지원 아래 기독교 사학을 비롯한 교육기관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교회는 학교, 병원, 복지재단 설립 인가를 수월하게 얻었고, 이는 교세 확장과 사회적 영향력 강화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또한 교회가 누린 가장 큰 특혜 중 하나는 정권으로부터 받은 토지 및 재산 증여였습니다. 당시 한 매체는 "정부가 교회에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며 종교적 기반을 다지려 한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복음의 순수성을 물질적·정치적 성공과 맞바꾼 시대의 비극적인 단면이었습니다.
1970년대의 대형교회 부흥은 유신 정권의 정치적 선전과도 기묘하게 맞물려 있었습니다. 1974년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여의도에서 열린 엑스플로 ’ 74는 32만 명이 운집한 대규모 집회였습니다. 당시 언론은 엑스플로 집회에 대해 "질서 정연한 군중의 모습에서 국가의 힘을 확인했다"라고 보도하며, 영적 부흥을 유신 정권의 치적으로 선전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교인들은 '민족복음화'라는 열정 속에 모였지만, 정권은 이 대규모 인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교회의 힘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전체가 침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암울한 유신 시대 속에서도, 진리를 위해 가시관을 쓰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1974년 지학순 주교는 유신 정권의 폭력을 규탄하는 양심선언을 발표하며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에 불을 지폈고, 그의 구속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결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3년 5월 20일 문익환, 안병무 등 개신교 신학자들은 ‘한국그리스도인 선언’을 통해 "유신은 국민에 대한 반역"이라고 선포하며 정권에 맞섰습니다. 이들은 민중신학이라는 새로운 신학적 흐름을 통해 고통받는 민중의 삶 속에서 진정한 복음의 의미를 찾았고, 도시산업선교를 통해 노동자들과 연대했습니다. NCCK 인권위원회 활동, 3.1 민주구국선언, 그리고 수많은 금요기도회는 권력과 자본에 침묵하지 않는 교회의 양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많은 목회자와 학생들이 구속되고 투옥되었습니다. 진보적인 교회의 활동은 철저히 검열당하고 탄압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피 흘리는 저항은 훗날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영적 토양이 되었습니다.
전쟁 시기의 침묵은 '생존'이라는 이해의 여지가 있었지만, 유신 시기의 굴종은 분명히 선택된 죄악이었습니다. 권력 앞에 무릎 꿇은 대다수의 교회는 번영을 얻었으나, 신앙의 본질인 예언자적 사명과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외치며 탄압받았던 소수의 교회는 비록 물질적 성장은 없었을지언정, 어둠의 시대 속에서 꺼지지 않는 양심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우리는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던 교회의 격렬한 저항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유신의 폭력 앞에 침묵하며 당신의 권위를 팔았습니다.
물질의 풍요를 얻기 위해 자유와 정의를 외면했습니다.
번영이라는 우상을 섬기며 십자가의 가시관을 버렸습니다.
권력에 대한 굴종이 아니라, 오직 당신의 진리 앞에 무릎 꿇게 하소서.
9월 26일 금요일 연재됩니다
제2부 : 권력과 교회의 결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