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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단상

어머니의 여름

by 여운



비 오는 날의 단상

어머니의 여름



비 오는 날 길을 나서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짐짓 미루다 미루다 맞춘 날,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길에서 비를 만났습니다


지난여름 낙상하시고 어깨뼈골절 수술 후

어머니는 아직도 재활요양병원에 계십니다,

그리 건강치 않으셨지만 기동도 하시고

볕 좋은 날은 동네 한 바퀴에 주일날은 예배참석도 거뜬하셨습니다.

하지만, 낙상 후 아직도 거동이 힘들어

침대에서만 계십니다.


구순이신 아버지와는 특별한 애착이 있으십니다.

병실에서 지금도 아무도 팔요 없다 하시고 아버지만 있음 된다 십니다.

아버지 역시 '입안에 혀처럼' 불편한 어머니의 손발이 되어

지난 몇 해 견뎌내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요양원"은 결코 보내시지 않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구순의 아버지는 요즘 걱정이 있으십니다,

봄에만 해도 교회까지 거뜬히 걸어 다녔는데

이제 가는 길에 두 번씩이나 쉬어야 한다며

병이 생긴 것 같다며 정밀검사를 하자 십니다.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노화라는 말 자체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얼마 전에는 지인이 돌아가셨다고 장지에 가신다기에

자녀가 돌아가며 말렸지만

몰래 다녀오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이 들어 그렇다는 것을 인정은커녕 이해조차 못하십니다,


그런 아버지가 지난여름 어머니를 병원에 모신 후

너무 힘들어하십니다.

노화는 인정되지 않고, 몸은 뜻대로 되지은 않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결국은 아들이 넌지시 요양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집으로 모셨다가 하는데 까지 하고 아버지나 우리 내외나 더 이상

방법이 없으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미뤄뒀던 요양원 방문에 하필 비가 옵니다.

밝고 환한 시설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맘에도 비가 옵니다.

시설에 냄새가 날까 분위기 우울할까

걱정이 됩니다.


이 또한 지나가야 할 길이라 생각해 봅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이 여름의 끝

어머니도 내려놓고 계십니다.

아버지도 내려놓고 계십니다.

물론 흔쾌하지도 기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갑니다.


아버지의, 어머니의 긴 세월에

오늘같이 먹장구름도 끼는 날도

찬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짱짱하고 환한 햇살의 날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은혜였습니다.

돌아보면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가을이 옵니다

견디기 힘든 여름을 지나

이 비 그치면 가을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이 가을에 큰애 결혼식이 다가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시대가 저물고

또 다른 세대의 시대가 열립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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