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 침묵으로 기록된 구속사의 이름
이 글은 제가 속한 교회 공동체 성경읽기 모임에서
창세기를 완독 하며 내일 다시 이어질 출애굽기를 생각하며
묵상 가운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넘나들기에
이를 정리해 적어 봅니다
감안하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죽었습니다.
오늘과 내일 사이, 창세기 마지막 장과 출애굽기 첫 장 사이.
요셉의 입관과 해골 사이, 죽음 같은 세월 430년이 흐릅니다.
(오늘과 내일 사이는 오늘 읽을 본문 창세기 마지막 장과 내일 읽을 출애굽기 사이를 의미하고 오늘과 내일이라 적었습니다)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 50:24-26]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마칩니다. 요셉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 맹세를 시킵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요셉이 관에 들어간 후 430년의 세월이 그저 흘러갑니다. 그 세월 동안 총리의 가족이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노예의 삶으로 전락했습니다. 요셉이 만든 애굽 토지법은 바로의 왕권을 강화했고, 노예의 삶과 착취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화려했던 총리의 기억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던 민족의 삶은 잊힌 채, 그렇게 430년간 철저한 외면과 하나님의 침묵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요셉의 삶을 고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하는 성공의 서사로 읽습니다. 버려지고 팔려간 소년이 역경을 딛고 한 나라의 총리가 되어 나라와 자신의 민족을 구원하는 영웅.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14년의 풍년과 흉년을 백성들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온전히 쓰지 않았습니다. 그 세월 동안 요셉은 흉년으로 죽어가는 농민들의 토지를 바로의 손에 바쳤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애굽 왕권 강화와 계급 사회의 심화를 가져온 중요한 사건입니다. 요셉이 데려온 그의 가족들은 결국 이스라엘 민족 노예사의 시작을 함께했습니다.
성경은 위대한 인물들의 뒤안길, 그들의 실수와 오류들을 가감 없이 기록합니다. 다윗이 그러했고,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삼손이 그러했고, 예수님과 동행한 베드로의 삶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실수로 사고를 저지르기도 하며, 부하를 죽음으로 내몰아 아내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은 그런 삶을 주님께 회개하고 용서받아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요셉은 흠 없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도 단호했고, 감옥 속에서 세월을 보내면서도 하나님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버린 형제들을 눈물로 용서하고 살길을 열어주기까지 했습니다. 흠 없는 요셉을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셨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왕권을 강화하여 백성들을 착취하고 토지를 빼앗았으며, 자신의 민족을 결국은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이를 요셉의 실수나 욕망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설명 없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비된 구속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설명이 없는 430년의 침묵, 성경의 외면이 나는 사실 참 힘듭니다.
요셉은 누구입니까?
성경은 왜 요셉의 불완전함에 대해 침묵하는가. 요셉의 정치적인 결정들이 훗날 가져올 고통, 그리고 그것들이 결코 하나님의 나라의 그림자가 아니었음에도 성경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430년의 깊은 침묵으로 답하십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하나님의 구속사의 도구로 사용되는 믿음의 영웅 요셉의 이면에 구속사의 모순이 읽히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예수의 예표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정치적 도구이자 모순의 상징일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성경의 침묵은 하나님의 방식일 수 있으며, 우리는 그 침묵 앞에서 더 깊은 믿음의 질문을 품게 됩니다.
아마도 나는 오랫동안 요셉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곱씹으며 힘든 시간을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애굽기 13장,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의 해골을 가지고 애굽을 떠납니다. 죽은 요셉의 유골은 이제 단순한 뼈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430년의 침묵과 고난의 시간 동안 잊지 않았던 구속사의 기억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라는 요셉의 맹세는 이제 더 이상 한 개인의 유언이 아니라, 한 민족 전체가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신앙의 짐이 되었습니다.
사실, 430년 동안 노예의 삶을 살던 민족이 20여 대를 거쳐 올라간 조상의 해골을 수습할 수 있을까, 과연 그때까지 남아나 있었을까 하는 인간적 의문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430년이 아니라 천년 혹은 더 오랜 세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소망도 희망도 없는 깜깜한 곳에서도 결국은 지키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430년 후 애굽을 떠난 요셉의 유골은 모세와 함께 40년의 광야를 떠돌다, 470년 후 세겜 땅에 장사됩니다. 470년 동안 요셉의 해골이 유실되지 않고 지켜진 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구속사를 설명하는 중요한 상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요셉의 유골을 메고 가는 여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모순의 시간들을 걸어갑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요셉의 유골과 같은,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는 표징들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때로는 누군가의 믿음의 고백일 수도 있고, 때로는 고통 속에서 홀로 지켜낸 신앙의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유골을 메고 나선 백성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의 기억을 짊어지고 걷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모순과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당신의 뜻을 이루고 계심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당신의 침묵이 두렵지만, 그 침묵 속에서 당신을 더 깊이 찾게 되는 나의 연약함을 봅니다. 요셉의 유골이 430년의 세월을 건너 해방의 증거가 되었듯, 나의 삶의 모든 고통과 눈물도 언젠가 당신의 영광을 위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완성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