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은 본국으로, 책임은 현지에
여운칼럼
쿠팡발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그 규모만으로도 대중의 일상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고객 계정 3,370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이 회사를 이용하는 거의 모든 이의 민감한 기록이 노출되었다는 의미다. 불과 며칠 만에 '탈쿠팡 인증'이 번지고, 수많은 이가 일상적으로 쓰던 앱을 지우는 이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기업은 사태 수습 과정에서 변화를 보였다. 한국 법인(쿠팡㈜)의 박대준 대표가 사임하고, 그 자리에 미국 본사(Coupang Inc.)의 법무총괄 임원인 해롤드 로저스(Harold Rogers)가 임시 대표로 선임되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이제 한국 법인의 최고 책임자는 미국 본사의 핵심 임원이 겸임하게 된 것이다.
언뜻 보면 본사가 책임을 강화하는 조치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다른 방식으로도 읽힐 여지가 있다. 바로 책임과 지배의 분리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효과다. 현지 대표가 물러난 자리에 글로벌 본사의 통제 아래 있는 임시 대표가 들어서면서, 대중이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그동안 신뢰를 주었던 이 회사가, 정말 우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 의식을 갖추었느냐”는 질문이 폭발한 것이다.
이제 단순한 ‘국적’ 논쟁을 넘어서, 이 질문의 본질, 즉 기업의 책임 소재와 이익의 방향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기업의 '국적'을 따지는 일은 우리 사회에 생소하지 않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삼성은 한국 기업인가, 글로벌 기업인가?"라는 질문이 뜨거운 논쟁을 낳았다.
당시 논쟁은 삼성이 해외 매출 비중을 높이고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지면서 생겨난 '한국 기업의 글로벌화'에 관한 고민이었다. 삼성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했지만, 출발점과 핵심 이해관계는 한국 안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한국 재벌 구조와 한국 노동시장과 깊이 얽힌 “한국에서 자라 세계로 나간 기업”이었다.
삼성 논쟁은 결국 “한국에서 자란 기업이 얼마나 세계로 나갔는가”에 관한 고민이었다. 성장의 외연 확장이 핵심이었다.
반면 쿠팡에 던져진 질문은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쿠팡 논쟁은 “처음부터 미국 기업이었던 회사가 얼마나 국내 기업처럼 보이도록 포장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와 함께 태어나고 성장한 기업이 아니라, 태생부터 다른 국적을 가졌던 기업이 우리의 삶 깊숙이 파고든 '국내 기업화'라는 포장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쿠팡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지만, 그 법적 구조는 명료하다.
최상단에는 쿠팡 Inc. (Coupang Inc.)가 있다. 이 회사는 미국 델라웨어 법인이며, 뉴욕 증시에 상장되어 있다(경제 매체 보도). 이 미국 모회사 아래에 한국의 쿠팡㈜ 등 자회사들이 100% 종속된 구조다. 매출의 90% 이상은 한국 소비자들의 지갑에서 나오지만, 지배권은 확고하게 미국에 있다.
지배구조를 보면, 김범석 의장이 모회사 의결권의 70% 이상을 보유한다(차등의결권).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미국 공시에서 “한국 소매시장을 포함한 전체 사업의 최고 의사결정자”로 명시되어 있다. 이익을 만들어내는 곳은 한국이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곳은 미국 델라웨어의 이사회라는 의미다.
이 구조는 법적 책임의 영역에서 더욱 첨예한 문제가 된다.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직전 시점에, 김범석 의장은 한국 법인(쿠팡㈜)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IR 자료). 이 결정은 법적 책임은 한국인 전문경영인에게 지우고, 실질적인 최고 결정권자는 미국 국적과 등기이사 부재라는 방패 뒤에 숨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구조는 책임 회피를 노린 설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문제의 본질을 짚기 위해, 우리는 '이익과 책임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잣대를 들어야 한다.
미국 본사가 법무총괄 임원을 한국 법인의 임시대표로 선임한 조치는 이번 사태의 구조적 성격을 명확히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이 조치는 본국의 지배권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한국 법인의 법적 책임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이처럼 지배, 책임, 이익이 국경별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구조는 이 기업이 우리 공동체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는 기업을 향해 아래 네 가지 질문을 던져 그 흐름의 방향을 명확히 해보아야 한다.
어디에서 돈을 버는가? 한국 소비자, 한국 노동, 한국 인프라가 만든 매출이다.
그 돈과 부(배당·지분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미국 델라웨어 모회사와 글로벌 주주에게 귀속된다.
누가 어디에서 결정하는가? 김범석 의장을 중심으로 한 미국 본사 및 이사회다(한 언론 보도).
사고가 나면, 우리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한국 법인까지 소송이 가능하지만, 미국 본사는 관할 및 법리 문제로 책임이 분산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법조계 지적).
이 네 가지 흐름이 서로 다른 국경으로 갈라지게 된 구조, 바로 그 지점이 문제다. 한국이라는 그릇에 담긴 이익은 국경 밖으로 유출되도록 설계되었고, 그로 인해 발생한 책임은 국경 안에 남겨진 대리인에게만 지워지도록 고안되었다.
문제는 “미국 회사냐, 한국 회사냐”가 아니다. 한국에서 벌어들인 이익과, 그에 대한 책임이 서로 다른 국경으로 흩어지도록 설계된 구조가 문제다.
쿠팡의 구조는 비록 물리적 강제성이나 폭력성은 없지만,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경영 구조와 위험할 만큼 닮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국경을 넘어 작동하는 패턴은 시대와 기술을 초월하여 반복되는 듯하다.
가장 두드러진 구조적 유사성은 이익·가치 이동에서 발견된다. 현지의 자원(쿠팡의 경우, 한국의 소비자 데이터, 노동력, 물류 인프라)으로 부를 창출하고, 그 최종 이익과 지분 가치(부)는 본국(미국 델라웨어)으로만 이동하는 구조다. 또한, 지배와 책임의 분리 패턴이 반복된다. 현지(한국)에서 사업이 운영되지만, 핵심적인 결정권은 본국(미국 이사회)에 머물고, 법적 책임은 현지 관리자(한국 법인 사장)를 앞세워 분리한다.
이번 미국 본사의 임시대표 선임 조치는 현대 플랫폼 기업의 통치 구조가 과거 제국주의적 구조와 닮은 점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국 법인의 관리자를 본국 임원이 대체함으로써, 현지 경영은 본사의 지휘 아래 놓이고, 이는 '현지 관리자·중간계층을 앞세우는 패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이러한 구조적 유사성은 소비자·노동자·판매자의 3중 종속 구조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소비자는 로켓배송에 익숙해져 이탈하기 어려운 '락인(lock-in)' 상태가 되고, 노동자는 알고리즘이 통제하는 배달 시간과 평가 시스템에 종속된다. 나아가 입점 판매자는 플랫폼 의존도를 높이며 생존을 위협받는다. 이는 과거 제국주의의 ‘현지 종속 구조’의 현대적 변형이라 할 수 있으며, '로켓배송'이라는 혁신 서사는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는다.
물론 시대적 강제성은 다르지만, 이러한 구조적 유사성이 반복된다는 것은 우리가 미래 플랫폼 자본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명확히 보여준다. 이 구조를 이해해야만 쿠팡 사태의 배신감을 단순히 감정적인 영역으로 국한하지 않을 수 있다.
쿠팡 사태가 유난히 배신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최근 급부상한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와 같은 다른 외국계 플랫폼과의 '신뢰 설계' 차이 때문이다.
알리·테무는 처음부터 “중국 쇼핑앱,” “해외직구 플랫폼”으로 인식된다. 이용자는 가격이라는 이점을 얻는 대신, 낮은 품질과 개인정보 리스크에 대해 자기 방어를 어느 정도 전제로 사용한다. 어느 정도의 경계심을 갖고 이용하는 것이다.
반면 쿠팡은 한국 이름, 한국 연예인 광고, '로켓배송', 청년 일자리 서사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국내 기업'에 준하는 신뢰와 일상성을 확보해 왔다. 소비자들은 이 신뢰를 전제로 자신의 일상을 맡겼다.
알리·테무와 쿠팡의 차이는, 단순히 “외국 기업 vs 국내 기업”이 아니다. 처음부터 외국 플랫폼으로 인식되던 곳과, 국내 기업인 것처럼 신뢰를 얻어 온 외국 플랫폼의 차이다.
전자는 소비자가 경계하며 쓰지만, 후자는 신뢰를 전제로 일상을 맡긴 뒤에야 구조를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만에 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민족기업”이라는 낡은 감정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경제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공동체’란, 이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발생하고, 노동과 세금, 데이터가 얽혀 있는 그 사회를 말한다.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한 기준은 단순하다.
투명성: 매출, 이익, 데이터, 지배구조가 어느 나라와 연결되어 있는지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
기여: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데이터 보호, 노동 환경, 지역사회에 대한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것.
책임: 이익을 가져간 만큼, 사고·피해 시 같은 공동체 안에서 책임을 지는 구조를 갖추는 것.
앞으로 우리가 기업의 국적을 말할 때, “어느 나라 기업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공동체와 이익을 나누고, 어느 공동체 앞에서 책임을 지느냐”이다.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떠오를 수 있는 반론에 대해 간결하게 응답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왜 비판하는가?”
맞다. 쿠팡이 인프라에 투자하고 수많은 일자리를 만든 기여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기여는 비즈니스를 위한 투자이자 비용일 뿐이다. 이익은 해외로, 책임은 낮게 유지되는 구조라면, 그 기여가 책임 회피의 방패가 될 수는 없다.
나아가 일부에서는 열악한 노동 현장 문제까지 구조적 불평등의 결과로 지적하고 있다
“미국 상장 자체가 문제인가?”
자본 조달을 위한 상장 자체는 비난 대상이 아니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시점에 맞춰 한국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 행동은 단순한 상장 전략이 아니라 책임 회피를 노린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 외국기업을 다 막자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외국 기업이든 국내 기업이든, 이익과 책임의 흐름에 투명하게 답하고, 같은 공동체 안에서 책임질 수 있다면 문제없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국경이 아니라, 상호성의 원칙이다.
쿠팡 사태는 한 기업의 보안 실패를 넘어, 국경을 이용해 이익과 책임을 갈라놓는 플랫폼 자본의 구조를 우리 사회에 드러낸 사건이다. 마치 공연 무대의 뒤편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는 연출가가, 정작 무대 위의 사고에는 법적 이름을 지우고 물러나 있는 상황과 같다.
우리는 이 '탈쿠팡'의 분노를 단지 소비자 보복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을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기업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사회적 질문으로 확장해야 한다.
마지막 한 문장은 짧고 단단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묻기 시작해야 한다.
“이 기업은 어느 나라 회사냐?”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경제 공동체 안에서, 이익과 책임을 공정하게 분담할 회사냐?”라고.
쿠팡 사태의 핵심은 단순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국적 논쟁이 아니라,
한국의 소비자, 노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얻은 이익과 지배권은 해외(미국)로 귀속시키면서,
사고와 피해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국경 안에 남겨두는
플랫폼 자본의 구조적 비대칭성을 드러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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