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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Dec 19. 2019

삼대 숙원사업 1

아버지의 꿈  -  그때는 그랬습니다.

 

 내 아버지의 꿈은 화가였습니다.

고교시절 그림을 그리면서 미대에 진학하는 꿈을 꾸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이 할머니는 못마땅했습니다,

아니, 아들이 환쟁이가 되어 밥도 못 먹는 삶을 살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는 아들이  “쓸데없는 생각”을 더 이상하게 할 수 없도록  활활 타는 아궁이 속에 아버지의 습작들과 화구들을 몽땅 던져 버렸습니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대가족의 가장으로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회사일에 바쁜 대한민국 가장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되고 식량증산,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던 그즈음입니다.

경제적인 일이 아닌 모든 일들은 “ 쓸데없는 짓”이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월남 파병을 가고, 포항제철을 짓고

해지는 저녁마다  애국가에 맞춰

국기하강식을 거룩하게 하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이 몸과 마음을 바치리라

충성을 되뇌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겪는 모든 사람들은

그림 같은 비경제적인 것은 경제와 병립할 자격조차 없는  사소한 일이라 믿었습니다.  

지금도 그 유령이 살아 가끔 우리 주위에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경제적이지 않은 모든 일은 죄악이라 믿는 사람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우리 뇌 속에 박아 놓은 표어



이른 아침 산에서 배낭 메고 내려오는 사람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을 마구 쓰는 사람

이런 사람을 보면 간첩 신고하라고 권하던 시절입니다.


옆집 아저씨가 대낮에 어슬렁 거리면

신고하던 시절입니다.

전 국민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군대처럼 일정한 신념을 공유하고

열심히 일하라 권하던 시절

변종이나 이탈은 용납이 안됩니다.


국가는 제일 먼저 도량형을 통일하고 제도를 정비합니다.

유사시를 대비하여 예비군의 동원도 가능하고

월마다 반상회를 정비하여 주민들의 반공방첩 정신도

드높여야 했습니다.

가정의례준칙을 발표하고

상가에 놓인  화환의 개수와 반찬의 양도 국가가 정해 주었습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모내기 도로만들기 쥐잡기 마을청소를 집단적으로 실시했다.



그 힘든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은

그 시절을 '낭만'으로 추억합니다.

군대 생활을 엄청나게 힘들게 한 사람들이

그 시절을 자랑스레 여기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집단적으로 함께 고통을 견딘 동지애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회상하는

그들의 1940년대가 바로

" 낭만적 제국주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1960년  어디쯤

그런 제국주의 시대를

해방 이후에 또다시

경험했었는지 모릅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군수공장에서 노동하는 모습, 출근하는 모습 (출처 https://blog.naver.com/jajuwayo/220587801553)




 예술, 쓸데없는 짓.
예술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     



산업 사회는 가족을 해체하고 지역을 해체했습니다.

그리고 감정의 문제, 정서의 문제는 드러내지 말아야 할 악습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한국사회의 압축성장은 경제적이지 않은 모든 것은 '삭제' 해 버렸습니다.

불과 50년 전 일입니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

우리나라의 모든 아버지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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