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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Dec 21. 2019

삼대 숙원사업 2

미술천재가 나타났다

 국민학교 일 학년 때 일입니다.(초등학교 아님 주의)

 나는 친구를 따라 몽땅 크레파스 한 벌을 들고 얼떨결에 어린이 미술대회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우수한 성적으로 시상을 받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미술천재가 나타났다


우리 가족에게 큰일이 닥쳤습니다. 난데없는 미술천재가 집안에 나타난 것입니다. 

아버지는 백방으로 아들의 장래를 돕고자 어려운 형편 가운데 미술학원을 찾아보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상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세월은 흘러  국민학교 3학년이 된 나에게 미술과외 선생님이 생겼습니다. 미술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 선생님. 그분은 저에게 4절짜리 도화지를 사용하게 하고 연필로 선 긋는 연습과 투명 수채화를 가르쳤습니다. 주말이면 인근 야산으로 풍경화를 그리러 다녔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때 나는 고등학생 입시준비반 학생들이 그리던 풍경화를 배웠던 것입니다. 국민학교  3학년이. 


다행히도 천재가 아니었던 나는 점점 그림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로봇과 만화를 그리고 싶었던 나는 천천히 미술과 절연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어느 날.

 아버지는 신문지에 고이 포장된 두 개의 액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미술대회에 상을 받던 그날 이후, 

회사를 마치고 동네 화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저녁마다 아무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모과와 사과가 있는 어두운 톤의 정물화 한 점과 시원한 산세가 그려진 풍경화 한 점을 그려 들고 오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마도 회사를 마친 늦은 저녁,  화실을 찾아 모과를 그리시면서 다시금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코 자신의 꿈을
송두리째 아궁이 속에 던져 버린 할머니와
화해를 하셨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후로도 화가가 되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화실을 찾는 그 저녁마다 오래된 상처를 그림으로 치유받고  아궁이에 꿈을 던져 버린 할머니와 뜨거운 화해까지 하셨다고 믿습니다.


 저도 아버지도 그림 그리는 것에 흥미는 있었지만 결코 천재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예술을 하는지

무엇이 되기 위해 예술을 하는지 

아직도 헷갈려할 때가 있습니다.


그림은 무엇이 되고자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행복하기에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도 나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것을 알았습니다.


2대가 흘러갔습니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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