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 그리고 유산슬

新 Tv가이드

by 여운

어느 날 가족 단톡 방에 낯선 단어가 등장했다.

“펭하~”


우리 가족 단톡 방은 눈높이가 상당히 낮다.

일요일 저녁 식탁에는 낮에 만난 교회 아기들과의 에피소드가 꼭 등장한다.


하지만

펭수의 등장은 좀 낯설다

모여라 꿈동산의 후예, 대두에 감기지 않는 왕방울 눈

무언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놈이 나타났다.

뭔가 다르다 그의 선배 뽀로로와도 다르고 영국에서 온 텔레토비와도

결이 다르다.


펭수

한계가 없다. EBS의 고고한 건전 캐릭터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이들의 친구도 관심이 없다,

변종, 변태, 변형,


우리는 수많은 펭수들을 알아 왔다. 캐릭터의 삶.

꿈과 희망, 동심 따위의 알록달록 풍선 같은,놀이동산 같은 캐릭터의 삶과

지퍼를 반쯤 내리고 인형머리를 벗은 채 담배 한 대 꼬나 문

캐릭터 인형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생각보다 꽤 아프다.


그런데 펭수는 다르다

뻔뻔하다. 아니 건방지다.

당당하게 X-Ray를 찍기도 하고

타 방송사에 출연하고 내레이션을 하기도 한다.


고향만 남극일 뿐, 체형만 모여라 꿈동산 일뿐

철저한 변종이다

mutant




쉼 없이 달리던 무한도전이 멈춘 후

제목처럼 또다시 도전이 시작되기를 은근히 기대했는데

김태호 Pd는 정체성이 없는 프로그램을 들고 돌아왔다.

시크하게 '놀면 뭐하냐'고 물으면서


출연자 그리고 상황, 그리고 관찰자(카메라)만 가진채

토요일 예능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관찰자의 시점을 옮겨보는 놀이( 카메라의 이동과 확대를 통한 상황의 확산)

가장 단순한 드럼의 리듬 하나가 확대되고 소통하고 수천수만의 다양한 결과물들과

상황을 만드는 재밌는 놀이를 거쳐

요즘, 유산슬을 가지고 열심히 놀고 있다.



20191114154438186jqek.jpg 신인 트롯 가수 유산슬의 홍보물


어느 날 갑자기 부캐의 삶을 사는 '유산슬'

곡을 받고 녹음을 하고 의상을 착용하고 행사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부캐의 삶이 점점 더 각인되어 간다.

유산슬도 유재석이 아닌 유산슬과 순간순간 적절히 넘나들기 시작하고

이제, 유재석도 유산슬의 존재와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방어 기제라는 심리학의 용어가 있다

defense mechanism, 防禦機制


스스로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심리

여러 가지 형태의 방어기제를 설명한다,

감정 분리, 퇴행 역시 방어기제에 속한다.



펭수는 아이들의 친구가 아니다

다 큰 20대와 30대가 열광한다.

펭수가 아무리 뻔뻔하고 건방진다 한들

더 큰 어른들이 그의 역할놀이를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상황 자체가 깨어진다


펭수는그냥 분리된 감정을 드러내는 것 일지 모른다

혹은 퇴행을 드러내는 펭수의 뻔뻔함과 건방짐에

내 유치함을 더하여 우리는

함께 즐기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


펭수의 의도가 아니다.

시대는 그의 분리된 자아를 셀럽의 삶으로 올려 세우고

펭수도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대두의 체형을 타고났으나

어린이의 친구가 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그에게

오히려 순진한 위로를 기대하는

어른이들이 너무 많은 탓이다.


삶이 너무 치열한지 모르겠다

청춘들아.


펭수에게 위로 받기 보다

서로의 체온에 기대야 한다.


펭수

눈뜨고 꾸는 꿈





유재석도 좋고

유산슬도 좋다


유산슬이라 불러 달라면 흔쾌히 우리는 유산슬이라 부를 준비가 되어있다,


나 역시 분리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가난하고 무능한 아버지의 삶과

예술과 구원을 이야기하는 고결한 정신이 존재한다

공존하는데 둘의 동거가 어렵다

나도 편리하게 자아를 분리 시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 부터인가
분리된 삶을 살아내는데 익숙하다.

세상 탓인지 , 내 탓인지

빠듯 빠듯 살아내다 보니

내가 누군지 어디서 온것인지

길을 잃은 지 오래되어 버렸다.


그런들 어떤가


유산슬이든 유재석이든

재밌으면 됐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가정과 상황 설정과 현실과 망상이

융복합되고 섞여 있어도

까짓것 관심이 없다.


이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니까.




우리의 감정이

퇴행이나 감정 분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펭수와 유산슬을 보는 내 눈길이

잘못된 시각이기를 바란다.

그냥, 눈높이를 낮추고 잠시 즐기는 일탈 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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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펭수, 그리고 유산슬


전통의 틀을 깨는 당신들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요즘 나는

세상을 예능으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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