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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Apr 24. 2021

스며든 시간들, 젖어든 시간들

이별은 언제나 낯설다. 이승현 목사님을 떠나보내며

제가 출석하는 교회에 15년간 시무하시던 담임목사님이 금번에 사임을 하시고 사역지를 옮기셨습니다. 별도의 인사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맞이한 송별이었는데, 막상 떠나시고 나서 마음 한편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몇 자 적어  송별의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목사님께 드린 제 마음을 정리하여 여기에 남깁니다. 개인적인 감정과 출석교회의 지나간 과거사들이 주관적으로 적혀 있음을 감안해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별은 언제나 낯설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어디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몰려듭니다.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열고 새벽기도를 클릭합니다.

민수기 22장 강해설교가 들려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습니다.

아 목사님이 떠나셨구나......”        

  

고백하건대

저는 임정석 목사님을 신앙의 아버지로 생각합니다.

16,7년 전 임 목사님 설교말씀을 통해 한동안 주일마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예배를 마친 후 나 혼자 고개 숙이고 교인들이 빠져나갈 때까지

예배당을 빠져나가지 못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당시 제게 닥친 역경의 시기와 함께 말씀을 통해  

제 교만이 깨어져 나가는 시작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말씀의 깊이와 넓이에 늘 감격하면서

말씀을 받을 때마다 깨닫고 아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목사님을 안타까움과 아쉬움 속에서 떠나보낼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과 스스로에 대한 분노는 오랫동안

교회 공동체에 대한 회의감으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임 목사님과의 이별의 감정 자체가

어려웠던 것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힘든 시기 하나님이 목사님을 사랑하셔서

피할 길을 주시고 이리떼를 피해 더 크게 쓰기에 합당한 곳으로 인도하셨으며

우리 교회로서도  '우리가  담기에 너무나 큰 그릇'이었으므로

합당한 사역을 찾아 하나님이 보내심은 복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교역자님들과의 이별이 꽤나 익숙합니다.

사춘기를 함께 보냈던 사랑했던 전도사님과의 이별의 순간은 지금도

생각하면 아련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족들에게 교역자님들에게 깊이 정들지 말라” 고 경계하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상실감이 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왔다가 떠나는 교역자님들과 특별한 감정을 가지지 않으려

의식해 왔습니다.   


 스며든 시간들, 젖어든 시간들 

사실,

15년의 시간이 흘렀음을 저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 15년의 시간 동안 제 삶이 평탄했던 적이 없었으며

경제적으로 내몰리고 다양한 삶의 고난을 피하고 숨고

외면하기 바빴던 시기이었습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며

지금도 그 세월에 연장에 저는 서있습니다.

공동체 내에서 바로 서지 못하는 자책감과

우울감 무력감에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 목사님께 딱 한번 찾아뵙고

내 삶을 상담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부임하시고 당시 분열돼 있던

교회의 상처를 회복하고자 노력하며

비전과 화합을 이야기할 때

저는 날이 선 감정으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의 화합과 회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위선과 그들의 위선의 무게를 재어가며

점점 더 교회의 경계로 바깥으로

자책과 무력감을 느끼며 스스로 내몰렸습니다.     


돌아보면 

15년 동안 목사님은 같은자리 같은 모습으로 서계셨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빠르게 변화하고 속도감 있게 살아가는 것보다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중심을 잡고 요동치 않는 것이 더욱더 어려운 일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무엇보다도 15년 동안 변하지 않은 표어

[하나님의 기쁨세상의 소망]

15년간 지켜온 이 표어 하나만 봐도 목사님의 진정한 저력이 이제야 느껴집니다.

이 표어는 아마도 제게는 평생을 지향할

본질적인 교회의 목표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목사님은

저에게 스며드셨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 계시면서 

늘 같은 복음을 전하시면서

나도 모르게 가랑비에 옷이 젖어드는 것처럼

우리 교회와 교인들은 목사님께 젖어들었습니다

목사님은 교만하고 악랄한 제게도

시나브로 스며드셨습니다.

언제부터 인지도 얼마만큼 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목사님은 저희 속에

스며들어 항상 같이 계셨습니다.     

목사님이 떠나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리고 목사님의 사임 소식과 사임의 변을 듣고

저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변화와 안정이라는 단어는 저 역시 우리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며

많이도 고민했던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점점 고령화되고 극단적으로 보수화되는 한국교회의

전형이 되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목사님의 사역과

목사님에 대한 막연한 신뢰로

목사님의 방식대로 느리지만 천천히  변화를 가져가실 것이라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시간만 자꾸 흘러가는 것에 대해

요즘에 와서는 조바심과 안타까움을 느껴왔던 터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아쉬움은 많지만

이임하실 교회의 안정과 떠나시는 우리 교회의 변화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임에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이별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마침내 다가온 이별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

별다른 감정의 동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오늘 아침

늘 있던 자리에서 

쑥 빠져나가 버린 묵직한 그 무엇을 발견했습니다.

늘 말이 없었기에 그냥 한 몸처럼 느껴지던 그 무엇이

빠져나간 자리가 너무나 시려 옵니다.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들기 시작합니다.

이제야 목사님이 제 삶 속에 함께 계셨던 것을 깨닫습니다.

목사님은 15년 동안 서서히 서서히

제 삶 속에 스며들어 계셨습니다.

내 생각 속에 젖어 들어 계셨습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지만

마치 풍경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오늘 아침에야

15년 동안의 목사님의 외로움이 비로소 보입니다.

오늘에야 목사님의 뒷모습의 아픔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목사님의 오래 참음끝까지 참음이 이제야 조금은 알 듯합니다.     

그 많은 세월 동안 자진해서 동역하지 못한 죄악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희 가족과 제게 특별한 사랑을 주신 것들이 이제야 보이고 

불현듯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이번 이별은

제게도 꽤 오랜 아픔을 남길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허전해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15년 동안 서서히 스며들었던젖어들었던 마음들이

쨍하게 말라 들어가기에는 

아마도 젖어든 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떠나신 후에야 깨닫는 무지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어눌하지만 먹먹한 마지막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목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오래 참음 하나님의 오래 참음을 이제 

저도 깨달아가겠습니다.

제 일생에 거쳐 지금도 참아내시고

언제나 그 자리에 기다리시는  나의 주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깨달아 가겠습니다.     

사모님과 가족들의 건강과 가정의 평안을 기도하겠습니다.

새로운 임지에서의 또다시 외로운 고난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쁨 세상의 소망이 될

새임지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글 속에 등장하는 임정석 목사님은 현재 서울 영등포교회에 시무 중이시며
이승현 목사님은 이번에 대구 평강교회를 사임하시고  서울 장석교회를 섬기시게 되셨습니다.
이 글의  초고를 이승현 목사님께 고별인사로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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