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가을에게, 봄에게>

만날 수 없는 친구에게 보내는 다정한 편지 <가을에게, 봄에게>

by 김경애


수필집 <제철행복>이 가져다준 그림책 <가을에게, 봄에게>


김신지 작가의 수필집 <제철행복>을 아주 따뜻하게 읽었습니다. 저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좀 더 세밀히 쪼갠 24 절기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각 절기마다 그 시기에 어울리는 음식, 활동, 책 등을 소개하지요. 저자가 누리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당신도 자신만의 제철행복을 챙겨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다정하게 권합니다.


이 책 덕분에 제가 첫여름인 ‘소서’에 태어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철행복>에서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가을에게, 봄에게>입니다. 냉큼 도서관에서 빌려왔습니다.



가을에게, 봄에게


그림책의 주인공은 계절을 의인화한 ‘봄’입니다.


나는 봄,

내가 잠에서 깨면

추위도 차츰 물러갑니다.

살금살금 일어난 나는

겨울에게 찾아가 인사를 건넵니다.

“이제 바꿀 때가 왔어.”

겨울은 늘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와, 1년 만이네. 봄이 왔구나.”

그로부터 몇 달이 흘러 점점 해가 길어질 무렵,

여름이 찾아옵니다.

“아아, 슬슬 바꿀 때야.”

나는 늘 이렇게 맞이합니다.

“앗, 1년 만이네. 여름이 왔어.”

그러고는 다음 해까지 다시 잠이 듭니다.


그런데 그때, 여름의 말이 들렸습니다.

“좋아, 가을이 올 때까지 힘내자.”

가을?

그러고 보니 나는

가을을 만난 적이 없네.



봄은 겨울에게 계절을 이어받고 여름에게 건네줍니다. 직접 만날 수 있는 거죠. 그러나 봄은 문득 만난 적이 없는 ‘가을’이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집니다. 겨울은 ‘가을은 따뜻한 아이’라 하네요. 그런데 여름은 '가을은 차가운 녀석‘이라 합니다. 그래서 봄은 가을에게 편지를 쓰기로 합니다. 편지 배달부는 여름이겠죠? 봄은 무슨 이야기를 썼을까요?



가을에게

처음 뵙겠습니다. 잘 지내나요?

이것은 벚꽃이에요.

봄의 꽃이지요.

가을에는 어떤 꽃이 피나요?

언젠가 만날 수 있길 바라며 - 봄이


편지를 전달하는 우체부가 '계절'이라니! 작가의 발상이 참신합니다. 답장을 기다리며 잠이 든 봄, 아마 기대감을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빠져들었을 것 같습니다.

1년이 흘러 잠에서 깬 봄에게 겨울이 가을의 답장을 전해줍니다. 이번에는 겨울이 편지 배달부가 되었네요.


봄에게

처음 뵙겠습니다.

편지를 받고 반가웠습니다.

이건 코스모스, 가을의 꽃이지요.

코스모스가 ‘가을의 벚꽃’이라고 들었는데

봄의 편지에서 처음으로 벚꽃을 알게 됐어요.

언젠가 만날 수 있길 바라며. 가을이.



답장을 받고 봄이 얼마나 기뻤을지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또 편지를 씁니다. 봄은 알지만 가을이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궁리하면서요.


봄은 아기 송사리를, 또 어느 해는 빨간 딸기를 소개합니다. 가을은 버섯과 온통 빨간 단풍을 이야기해 줍니다. 몇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봄은 단풍나무가 가을에 빨개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을은 잎이 떨어진 벚나무를 찾아내고는 꽃이 가득 피는 봄을 상상하게 되고요. 같은 걸 보면서도 아주 다른 모습을 보는 것이지요. 서로가 더 풍성해집니다.


봄은 가을에게 아지랑이 핀 봄 하늘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지지배배 여러 새들이 노래한다는 것도요. 가을은 어떤 답장을 보내올까요? 귀뚤귀뚤, 쓰르람쓰르람 벌레 우는 밤을 소개하네요. 아름다운 음악으로 밤이 즐거워진다면서요.


둘의 편지 마지막 문장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언젠가 만날 수 있길. 봄이

언젠가 만날 수 있길. 가을이

둘은 결코 만날 수 없지만 항상 좋은 친구라는 것을 알아갑니다.


책 속에는 여름이 웃으며 봄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긴 봄은 나처럼 산뜻한 매력은 없지.”


겨울이 가을에게 하는 말도 들어보실래요?

“가을은 나처럼 씩씩하진 않지.”


봄의 편지를 가을에게 전하는 여름, 가을의 편지를 봄에게 전달하는 겨울.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뿜뿜 뿜어납니다. 그림책은 봄과 가을이 주인공인데 저는 갑자기 여름과 겨울의 팬이 되어버렸습니니다.


지금은 '춘분'

그림책의 글은 사이토 린우키마루 두 사람이 함께 썼습니다. 그림은 요시다 히사노리가 맡았고요. 일본과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산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계절을, 절기를 세심히 느끼며 사는 삶은 풍성합니다. 우리 삶의 터전인 자연을 더 잘 알게 되고 친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어제부터 춘분이 시작되었습니다. 춘분은 24 절기 가운데 네 번째 절기로,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아지는 날입니다. 춘분을 지나면서 낮이 점점 더 길어지고 본격적인 봄이 시작된다고 하네요. 곧 온갖 봄꽃들이 경쟁하듯 피겠지요. 어린 송사리는 헤엄치고, 하늘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새들은 지지배배 울어댈 봄 말입니다. 여러분만이 알고 누리는 봄의 매력을 담아 가을에게 편지 한 통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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