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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pmage Jan 23. 2021

메모는 자기 성찰의 도구

열 한 번째 책 - 『메모 습관의 힘』/ 신정철

1.

서점에 가면 메모에 대한 다양한 책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책에서는 '메모'와 함께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연관어처럼 붙는다.


부자, 성공, 기적, 기술, 마법, 뇌, 과학 등
 

제목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들을 읽으면, '과학'이나 '마법'같은 '메모' '기술' 익혀 단숨에 '부자' '성공'하는 '기적' 만들  있을  같다. 그래서인지 책을 들고 집으로 오는 내내, 나는 성공의 지름길을 단숨에 찾은 기분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책을 펼치는 순간, 그런 기적은 메모를 하지 않는 이상 신기루에 지나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 인터넷 포털 커뮤니티에서 『메모 습관의 힘』이란 책을 소개받았을 , 목적(Why) 없고 방법(How)과 수단(What) 기술한 책으로 생각했다. 촌스러운  표지도 더욱 그런 생각을 부추겼다. 하지만 읽어보니  책은 여느 책들과는 달랐다. 이 책은 메모가 '지식'과 '재능' 뿐만 아니라 '슬기'와 '지혜'를 키우는 도구라고 말한다. 또한 흔히 사람들이 외부(타인) 인정과 물질적 풍요를 성공의 필요조건으로 아는 것과 달리,  책은 내부(자아) 실현과 정서적 만족을 성공의 충분조건으로 인식한다. 아마도 저자는 내향적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2.

저자가 많은 독서와 세미나를 통해 정리한 정보와 생각이 서로 충돌하고 섞여서 저자만의 글로 재창조되는 과정을 보면, 그는 유연한 사고와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특히 그가 창조성을 자신만의 언어로 새롭게 정의할 때, 더욱 여실히 드러낸다. 

창의성은 서로 다른 생각을 충돌시켜 새롭고 독특한 방식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님이 그의 스승인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Consilience』를 '통섭(統攝)'이라는 번역 하여 소개했는데,  뜻이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라고 했다. 저자의 생각도 이에 맞닿아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과거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가 소개하는 창조성의 구현 방법과 과정의 몇몇 부분은 내게 맞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 안에 있는 세 가지 사람'과 '메모 리딩'은 내게 맞지 않았다. 나는 메모 또는 필사를 통해 책의 내용을 따로 정리하여 범주 분류를 하지 않는다. 읽어야 할 책이 많고, 한 책만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없기에 그렇다. 그래서 책의 여백에 생각을 메모한다. 내게 가장 최적화된 방법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책을 다시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그러나 그 덕분에 책의 인용을 위해 일부분만 읽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글의 맥락을 위해 전후 내용은 읽는 번거로움이 나는 좋다. 그러니까, 이는 그저 개개인의 취향과 선호의 차이일 뿐이다. 본질은 창조적인 글쓰기를 통해 자기 성찰과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시비는 무시해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독서하고, 메모하고,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저자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당신만의 방법을 만드는데 참고만 하면 된다. 물론, 그의 책은 매우 좋다.


나의 창조성 또한 약간은 다르다. 『통섭과 지적 사기』의 강신익 교수님이 쓰신 내용을 보면(지식의 대통합, ‘통섭’이면 충분할까? - 강신익) 원효대사의 회통(會通)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좀 여기에 마음이 기운다.


내가 ‘사물에 널리 통한다’는 통섭보다는
‘언뜻 보기에 서로 어긋나는 뜻이나 주장을 해석하여 조화롭게 한다’는
뜻의 회석(會釋) 또는 회통(會通)을
더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

결국 사유와 사색이다. 독서, 메모, 글쓰기의 과정 속에 사유와 사색이 함의되어 있다고 본다. 쉽게 말해, 어떤 화두를 깊이 생각하고 삶의 이치를 따져가며 자기를 성찰하는 것이 숨겨져 있다.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에서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철학을 소개한 내용을 보면, 데카르트가 얼마나 사유를 중요시하게 생각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 그도 사유와 사색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 것이 아닐까?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어떤 회의주의자도 부정할 수 없는 제1명제를 밝힌 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이다.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기존에 제1명제로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한다. "나는 내가 사유하는 동안만 존재하고, 사유를 멈추자마자 존재하는 것을 멈춘다."라고 말이다. 결국 데카르트가 존재한다고 말한 것은 육체를 포함하는 실존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것은 '순수한 생각' 혹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정신, 영혼, 지성 혹은 이성'을 의미했던 것이다.

 -강신주, 철학 vs 철학, 데카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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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커버 제목은 이 책의 목차의 일부분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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