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pmage Sep 06. 2015

철학과 심리학, 내게 머물러 감사한 것들

세 번째 이야기

 내가 지나치게 의존적인 객체의 삶에서 벗어나 당당히 주체의 삶을 살겠다고 공언했을 때, 나를 지켜보던 주변의 생각은 어땠을까? 물론 다양했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공리적 사고나 이분법적 가치 판단에 근거한 “그러면 안돼” 식의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당찬 공언에 대해 대부분은 염려와 당혹이란 피상적 표현 뒤에 배신과 상실의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요동쳤었던 폭풍의 파도는 잔잔한 미풍으로 넘실거리는 저녁의 앞바다로 돌아온 후였다. 일부는 이런 나를 다시 망망대해로 쫓아 보내려고 했지만, 나는 이미 주체(주인)의 닻을 바다의 깊은 밑바닥에 내린 터였다. 물론, 그들로부터 내가 받은 것은 씁쓸한 단절의 화살이었다. 약간의 배의 요동만이 감지했을 뿐이었다.


Hurricane at the Sea, 1850


- 당신이 원하지 않는 것 같으니, 이제 연락하지 않는 것이 좋겠군요.
      - 우리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사는데 연락 한 번 없다니요. 너무 연락 안 하는 것 아닌가요?
      -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마치 남처럼 구는 군요.


 예전의 나는 매우 다루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는 세상과 규칙에서 살았던 사람이었다. 아마도 나를 통해서 우월감을 얻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으로 나를 통제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내가 원하던 것들은 주로 관심, 애정, 사랑, 공감, 인정, 보호 등의 유아기적 수준의 감정이었다. 특히나 인정 욕구는 매우 강했다.  사실 그들이 내게 인정에 대한 말들을 딱히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굳이 직접적인 표현으로 인정을 갈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의 말과 행동은 나를 인정해달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그저 던진 의례적인 말에도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었다. 그들과 함께하면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착각을 마약 같은 환상처럼 품고 살았었다. 그러다가 깨어나면 그토록 허무하기 짝이 없는 초라한 현실과 마주하게 되지만 말이다.


Lunar night on Capri, 1841


 그러나 나의 삶의 주인공이 '나'임을 공언하고 그들의 세계와 규칙이라는 틀을 박차고 나왔을 때, 그들이 겪는 복잡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소용돌이였다. 그들의 세계와 규칙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은 나였다. 내가 원할 때 들어왔다가 다시 뒤돌아선 모습을 봤을 때, 그들은 당혹감에 이어 배신감도 느꼈을 것이다. 결국, 그들도 나로 인해 상처받은 피해자였을 뿐이었다. 내가 받았던 크고 작은 상처의 누적을 그들은 한 번에 받은 것뿐이지만. 사실 나도 처음에는 두려웠었다. 내가 과연 주체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들과의 단절로 인해서 내가 고독감을 느끼지 않을까? 내가 이런 감당을 해본 적이 있던가? 이런 생각의 소용돌이가 치솟아 나를 삼킬 때면, 그냥 거칠고 메마른 객체의 땅으로 다시 파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나를 일으켰는데, 그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 깨달았을 때, 깊은 심연의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것 같았다. 나의 내면과 진지한 대화가 거기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막연한 생각으로 대형 서점을 무작정 찾아가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이 쓴 책이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다. 때로는 옥신각신 붙어 있는 크고 작은 건물과 빌딩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조각배처럼 목적지 없이 걷고 또 걸었었다. (이무렵에 등산을 시작했다) 한 번은 따스한 온기를 머금고 내리쬐는 햇빛에 눈을 떴을 때, 문득 꿈에 갔었던 제주도가 떠올라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를 탄 적도 있었다. 결코 불필요하지 않는 소중한 나의 경험이자 시도였다. 이런 노력으로 나의 내면과 대화에 필요한 도구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철학과 심리학이었다.


chains of the caucasus mountains, 1869


 심리학은 나의 과거를 철저히 해체하고 분리하고 분석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철학은 현재를 있는 그대로(Here and Now) 바라보게 했다. 좀 더 철학의 도움을 말하자면, 철학은 현실 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게 하여, 직접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주체로서 나를 성장하게 했다. 그래서 철학과 심리학은 내가 나의 주변 사람들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다시 일깨워 주는 등대 같았다. 모든 기능을 다 설명해주는 전자제품 설명서가 아니라,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가 주는 공포와 불안감을 한 순간에 떨쳐주는 등대 말이다. 등대는 묵묵히 그렇게 서있으면서 말하고 있었다.'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Neapolitan Lighthouse - Ivan Aivazovsky, 1842


 내면과의 대화는 정말 글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경험이었다. 하루에도 나의 내면과 다양한 생각이 여러번 충돌했었다.  그 파편들이 머리 속에 흐트러진 상태로 유영해 나를 더 어지럽게 하곤 했다. 특히나 내가 선천적(유전)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후천적(환경)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누가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들었나 하는 원망과 분노가 섞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은 분명 치유의 과정이었다. 점점 감정을 사실로부터 떼어내는 분리 작업을 하면서, 나를 분리한제 3자로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매우 오랜 기간 동안의 작업이었으나 치유에 과정임은 분명했다. 또한 내가 알지 못했던 고통을 받아왔다는 사실과 이유 있는 진실을 마주하고 깨달았을 때 환회로 가득했었다. 하지만, 곧이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거쳐 '나 또한  그렇구나'라는 허무에 도달했었다.. 양가적 감정이 합쳐지면서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을 찍을 수 있었다. 이미 다 알아버린 길 위에서 다시 길을 낼 필요 없거나 길을 잃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나는 철학, 심리학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더 공부하고 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낳고, 알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철학개론서만을 집어 들고 위대한 철학자들의 개념과 싸우기 보다는, 나를 읽히게 만드는 책도 읽어가며 공부하고 있다. 물론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해서 아직도 과거를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주체로서의 삶을 살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재밌는 사실은 이제 그들이 내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답해주던 그들이 이제는 내게 묻고 나의 대답을 기다린다. 물론 친절한 말에는 거리감이 있고, 친근한 말에는 섭섭함과 서운함이 있기도 하다. 때로는 감정의 격정이 용수철처럼 튀어오를 때도 있다. 상대가 심하다 싶을 때는 나도 응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호하게 나의 의사를 전달하며 거부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지켜야 하는 선 안에서 말이다.  보통 대화체로 말한다면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선에서.


View of Constantinople, 1870


위대한 소명이나 창대한 목적 따위는 내게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고민하고, 조금 더 타자를 이해하고, 조금 더 세상을 관찰하면서 살려는 것뿐이다. 이런 삶을 사는데 도움을 주는 철학과 심리학이 내 곁에 있음을 감사하다.


-fin-


※ Cover Picture : 모네의 "Lighthoust at the hospice"

※ 본문 그림의 화가 : 러시아 해양화가 이반 아이바좁스키(에 대해 조금 알고 싶다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그림에서 감정을 느끼고 싶다면)

※ 글의 상업적인 용도 사용 및 무단 편집 이후 게시를 하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한 선택과 만약이라는 사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