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대선댁과 연락 없는 춘삼
첫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3화입니다. 2화에서는 춘삼이가 교통사고로 죽었지요. 춘삼이의 어머니는 대선 댁이고요. 대선 댁은 어떤 사람이고 춘삼이의 군 생활은 어떻게 됐는지 3화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첫 소설이고 초고이니 고퀄을 기대하고 읽는 분들께는 미리 양해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큰 아들이 장가간 후에 대선 댁은 며느리에게 살림을 맡기고 봇짐 장수로 나섰다. 나이는 쉰이 되어가지만, 아직 쌀가마니 하나를 머리에 일 힘은 남아있었다.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입이라도 하나 줄일 요량도 있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가끔은 지나가는 남정네들에게 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그럴 땐 주저 않아 울고 싶었지만,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큰 화를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대선 댁도 모르게 따라온 남자가 그녀가 인적 없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녀를 덮친 것이다. 처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 늦게까지 한잔하고 길을 가던 남자 둘이가 그녀를 구해 주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그녀는 비녀를 무기로 만들었다. 비녀 한쪽을 창처럼 날카롭게 만들고 반대쪽을 이용해 덮었다. 일전에 시장에서 들은 옛날이야기를 듣고 대장간에 부탁해 특별히 만든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은 손에 익었고 사내들의 농지거리에도 조금씩 무던해졌다. 언젠가부터는 그녀의 입에서도 사내를 향한 반격의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해진 그녀의 기운이 느껴지는지 그녀를 덮치려고 나타나는 남자도 더 이상 없었다.
대선 댁은 다양한 품목을 사고팔았지만 꿀과 달비를 주로 취급했다. 부산이나 대구의 시장에서 달비를 사서 시골에서 팔고 시골 양봉업자에게 꿀을 사서 대구나 부산에 파는 식이었다. 그녀는 한 번 나가면 한 달이나 두 달은 지나야 집에 돌아왔다. 늘 그런 식이어서 아들 내외도 어머니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가 없는 동안에는 입이 하나 줄어 수월했고 어머니가 돌아오면 살림에 보태라고 몇 푼이라도 주었기에 아들 내외도 내심 어머니가 일을 계속하기를 바랐다.
대선 댁은 악착같이 돈을 벌었지만 모이지는 않았다. 그녀가 봇짐으로 들 수 있는 물건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두루 다니면서 자주 가는 동네에는 제법 친해진 사람도 있었고 사람과 어울리며 웃는 재미도 있었다. 끼니와 잠은 주로 혼자 사는 과부 집에서 해결했고 가격은 취급하는 품목을 싸게 팔거나 나눠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혼자된 지 오래됐지만, 남자를 찾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가끔 시장이나 길에서 힐끗힐끗 쳐다보다 따라오는 남자도 있었고 눈이 맞아 정을 통한 남자도 있었지만, 관계를 지속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 둘이었고 장가 밑천이라도 챙겨주려면 뼈가 부스러져라 일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래도 가끔 찾아오는 외로움은 사무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한숨은 끊이지 않았다.
장성한 아들들을 보면 언제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고 온몸에 기운이 났다. 세 아들은 그녀에게 자부심이었고 존재 이유였다. 특히 춘삼이는 그녀의 꿈이었다. 자식에게 호강을 바란 건 아니지만, 춘삼이는 꼭 그렇게 해 줄 것만 같았다. 춘삼이는 어머니가 일하는 줄 알면서도 명절마다 그녀에게 꼬박꼬박 선물을 했다. 비싸지는 않았지만 신발이나 장갑, 옷가지를 사 왔을 땐 그녀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걸 꼭 끌어안고 자기가 일쑤였다. 장사를 하며 뒤늦게 배운 술을 한잔하면 꼭 죽은 남편 생각이 나 눈가가 젖었다.
그런 춘삼이가 군대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얼마 전에 둘째가 곧 월남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었다. 북한에서 빨갱이가 내려와 사람을 죽이고 또 그 빨갱이를 소탕하느라 국군이 죽어나갔다는 이야기는 이 삼일에 한 번꼴은 들었다. 군대는 그녀에게 무서움 그 자체였다. 요즘 들어 부쩍 휴가 나오다 죽은 막내 시동생이 꿈에 등장해 그녀를 부를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 벌떡 일어나는 그녀의 이마에선 땀이 흥건했다.
답답한 마음에 한 동네에 사는 시동생에게 물어봐도 퉁명스럽고 싸늘한 대답만 돌아왔다. 더 물을 수도 없는 건 시동생이 형님 없는 그녀를 막 대했기 때문이다.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시동생이 처음부터 낯설었지만, 시간은 조금씩 그를 두렵게 했다.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알 수 없지만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부터는 거들먹거리기 일쑤였고 더 쌀쌀맞았다. 일가친척이 더 무섭다는 말은 그녀에게도 해당됐다.
춘삼이의 입대는 기정사실화됐다. 울며불며 못 간다고 막았지만, 춘삼이는 걱정 말라고 떠났다. 막상 춘삼이가 떠나자 언제 울었냐는 듯 그녀는 다시 일을 나갔다. 예전처럼 한두 달에 한 번씩 집에 들러 큰 며느리에게 살림살이에 보태라고 돈을 주고 며칠 있다가 다시 일을 나갔다. 그 생활의 반복이었다.
춘삼이가 군대 간 이후로 그녀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집에 들렀는데, 춘삼이가 매달 한 번은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대선 댁의 친정도 살림살이는 넉넉지 않았지만, 글은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 덕에 한글은 배울 수 있었다. 그 덕에 아들의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아들의 편지는 늘 비슷했지만, 편지를 읽을 때마다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났다. 아들이 건강하게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에게 큰 힘이었고 삶의 원동력이었다.
춘삼이가 군대에 들어간 2년 반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대선 댁은 집에 들러 편지부터 찾았다. 편지가 오면 아들 내외는 대선 댁이 쓰는 방 작은 장롱 위에 편지를 뜯지도 않은 채 올려놓았는데 무슨 영문인지 없었다. 아들 내외는 들에 일하러 가고 없어 저녁까지 기다렸다 물었다. 큰 아들 내외는 아직 편지가 안 왔다고 했다. 대선 댁은 평소보다 이틀 더 집에 머물렀지만 결국 춘삼이의 편지는 오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별일 있겠냐는 생각으로 다시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나간 지 보름 만에 집에 들어왔다. 이번에도 편지가 오지 않아 아예 편지를 받을 때까지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녀는 우체부 청년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밤에는 뒤늦게 배운 막걸리를 마셨다. 그녀는 막걸리를 배우고선 집에다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집에 있는 막걸리를 한두 잔 먹고 나면 눈이 스르르 감겼고 곧 잠이 들었다.
춘삼이의 편지를 두 달째 받지 못했을 때 대선 댁은 큰 아들을 앞세우고 면사무소로 갔다. 아직 동네에 전화기가 들어오지 않아 전화가 있는 면사무소에 가서 춘삼이 부대에 전화를 하려는 참이었다. 큰 아들은 무슨 일이 있겠냐고 만류했지만, 대선 댁의 막무가내에 따라나섰다. 처음에는 면사무소 직원이 전화기를 쓸 수 없다고 했다. 대선 댁이 울음을 터트렸다. 연기는 곧 설움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쏟아져 그대로 두면 곧 면사무소를 덮을 셈이었다. 면장은 무슨 소란이냐며 소리쳤고 면사무소 직원은 어쩔 줄 몰라하며 설명했다. 면장은 똥 밟은 듯 표정으로 제 방으로 들어갔다. "에이 씨, 빨리 내 보내"
전화기를 써도 된다는 말에 대선 댁은 언제 울었냐는 듯이 울음을 그치고 얼굴을 닦았다. 옆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아들은 동생이 편지에 써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울리자 대선 댁이 수화기를 잡았다. 뭔 놈의 전화는 통화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는지 몇 번이나 연결한 후에야 춘삼이의 부대와 연결됐다.
"통신보안, 백두산 부대 일병 김남석입니다."
"거기 백두산 부대지예? 지는 김춘삼 병장 애민데예? 우리 춘삼이랑 통화 좀 할 수 있능교?"
"예? 누구 말씀하셨습니까?
"춘삼이예, 우리 춘삼이, 병장 김춘삼요."
"김춘삼 병장, 어... 그게 좀... 지금 통화는 어렵습니다."
"아이고 전화 좀 연결해 주이소. 매달 편지 보내던 우리 아들이 두 달이 지나도록 편지 한 번 없어예"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다시 울음보를 터트렸다. 잠시 뒤 전화기에서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이 흘렀다.
"예, 어머니, 김춘삼 병장의 중대장 이철민 대위입니다. 충성"
"다름이 아니고예, 우리 아 잘 있는지, 와 이래 편지 안 쓰는지 궁금해서예, 우리 아 좀 바꿔 주이소."
"어머니, 지금 춘삼이가 훈련 갔습니다. 얼마 전 임진강 무장공비 사건 이후로 야외 훈련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춘삼이는 아무 일 없습니다. 이제 전역할 때도 얼마 안 남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편지는 당분간 쓰기 어려울 겁니다. 전군이 비상상태입니다. 끝나는 대로 꼭 편지 쓰라고 하겠습니다."
"진짜 괜찮습니까? 그러마 춘삼이한테 엄마가 많이 기다린다 카고예, 지는 마 중대장님만 믿겠습니더."
"예, 어머님, 걱정 마시고 춘삼이 건강하게 잘 전역시키겠습니다."
더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면사무소 직원들 모두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어 더 길게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춘삼이가 건강하다는 말에 다행스러웠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큰 아들은 면사무소를 한 바퀴 돌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면사무소를 나오는 순간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야야, 내가 전화했을 때 내가 춘삼이를 찾았다 아이가. 그때 그 병사가 못 들을 걸 들은 거 맹키로 화들짝 놀라더라. 무슨 일 있는 거 아이겠제?"
"어무이 무슨 일 있겠심니꺼? 어무이처럼 군대 전화하는 사람이 없는데, 전화를 하니까 깜짝 놀랐겠지요. 중대장이 춘삼이 건강하다 안 했심꺼, 우리 춘삼이 나올 때 됐응께 걱정 말고 기다립시더."
"그렇겠제?" 대선 댁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