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처음이라...<삼대>

2화. 춘삼이의 과거

by 막시

에세이를 썼는데 어느 날부터 소설을 쓰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일단 소설을 출발시켰습니다. 출발이 있으면 반드시 골인이 있습니다. 그건 러너의 법칙입니다. 지금은 잘 쓰고 못 쓰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달리기도 처음에는 완주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그래도 잘하고 있는지 못하는지 누군가 이야기해 주면 큰 힘이 되더라고요. 네, 맞아요. 응원을 부탁드리는 겁니다. 이제 갓 달리기 하는 사람처럼 이제 갓 소설을 쓰는 사람이거든요.


오늘은 1화 <야구 경기가 열리던 날>에 이어 2화 <춘삼이의 과거>입니다.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로 춘삼이는 입원과 퇴원을 밤낮처럼 반복했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동안에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 일쑤였다. 문제의 그날은 한 달 만에 집에 오던 날이었다. 머리카락은 덕지덕지 떡이 된 지 오래고 수염은 아무렇게나 돋아나 덥수룩했다. 아래위 입은 건 옷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누더기였고 시커먼 신발에는 누런 흙이 여기저기 눌어붙어있었다. 파리 몇 마리가 그의 머리 위에서 앉았다 날았다 했다.


춘삼이의 둘째 형 집은 동네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다. 외부인이 들어올 때 만나는 독박골의 첫 번째 집이다. 형집을 보자마자 허기가 더 솟구쳤다. 식은 보리밥이라도 먹으려고 형집에 발을 들였다. 깨끗한 현관을 보고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들고 신발을 벗었다. 신발을 벗자 구멍 난 양말에서 시커먼 엄지발가락이 드러났다.

"형님 집에 있습니꺼?"

형이 집에 없는 줄 뻔히 알지만 누가 있나 싶어 불렀다. 형은 월남전 파병 군인 출신인데 그때 모은 돈으로 일찌감치 철물점을 시작했다. 명절이나 초상이 아니면 고기 구경하기 힘든 동네 사람들과 달리 둘째 형은 꽤나 잘 살았다. 농사가 풍년이든 흉년이든 상관없이 농약과 비료는 항상 필요했고 새마을 운동이다 뭐다 건축 토목용 도구와 장비가 날개 돋친 듯 팔렸기 때문이다.


집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어차피 누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식은 밥이라도 있으면 먹고 없으면 물이라도 한잔하려 했을 뿐이다. 형은 얼마 전에 기와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양옥을 지었다. 도시에 가야 있을 법한 주방과 수세식 화장실도 들였다. 주방에 가니 아침에 먹은 음식이 그대로 있었다. 밥솥을 열었더니 하얀 쌀밥이 한가득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있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양푼이에 퍼서 그 위에 두루치기를 부었다. 숟가락으로 몇 번 저어 입에 욱여넣었다. 첫 숟가락에 사레들려 연거푸 기침을 했다. 물을 마시고 나서야 제법 기침이 누그러졌다. 점잖게 밥을 먹을 만도 했지만 허기가 가만두지 않았다. 어제 점심을 먹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이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빠른 손놀림과 입놀림이었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마신다고 해야 더 어울렸다. 한 양푼이를 먹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등짝과 붙었던 뱃가죽이 떨어졌다. 물을 한잔 마시자 배가 터질 것 같았다. 트림을 한번 하고 나서야 주방 모습이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 커다란 냉장고와 식탁은 몇 달 전에 못 보던 것이었다. 거실로 나오자 큼지막한 오디오가 있었다. 아직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포장 비닐도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그날 문제가 생겼다는 건 경찰이 알려줬다. 춘삼이가 형 집에 들어간 날 형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했다. 경찰은 춘삼에게 자백을 강요했다.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는데 춘삼이가 자백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경찰은 물론 아무도 춘삼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


춘삼이가 밥을 먹고 나간 다음 날 춘삼이의 둘째 형과 형수는 대선댁을 찾았다. 춘삼이의 형수는 대선댁을 보자마자 소리 높여 울부짖었고 형은 남을 대하듯 괴성을 쏟아냈다.

"어무이 춘삼이가 우리가 죽을 고생을 해서 모아놓은 돈을 다 가져갔소. 교도소에 보내든 병원에 보내든 해야겠소. 남한테 부끄러워서 말도 못 하겠고 이번에는 어무이가 포기하소. 이대로는 못 사요."

대선댁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니가 한 번만 더 참으마 안 되겠나? 니 동생이다. 니가 좀 참아라. 불쌍한 니 동생 니가 챙겨야지..."

"춘삼이 봐주다가 나 죽겠소. 이번엔 절대 안 돼요. 내 벌써 경찰에 신고했소. 그리 아소" 이 말을 남기도 아들 내외는 차갑게 돌아섰다.

"아이고 우리 춘삼아, 춘삼아, 이 일을 어쩌면 좋노. 니는 왜 그 짓을 했노..."


얼마 전 춘삼이는 진주댁 아들의 얼굴을 엉망진창 자갈밭으로 만들었다. 일곱 살 산이가 진주댁 손자와 어린이집에서 싸웠는데, 산이가 진주댁 손자의 얼굴에 상처를 낸 모양이다. 그 집 아들이 어린이집을 찾아 산이를 때렸고 그걸 안 춘삼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때도 둘째와 며느리는 득달같이 찾아와 똑같은 말을 했다.

"어무이 춘삼이를 교도소든 병원이든 당장 보내야겠소."

그들이 늘 하던 방식이었고 대선댁도 늘 하던 방식으로 했다. 눈에 흙이 들어와도 춘삼이를 병원에 못 보낸다고 떼를 썼다. 큰아들에게 부탁해 진주댁 아들에게 백만 원을 주고 겨우 합의했다. 춘삼이가 일을 낼 때마다 해결은 큰 아들의 몫이었다. 남의 논을 빌려서 농사짓는 큰아들이 잘 살 리가 없다. 아들이 말을 안 했지만 백만 원도 여기저기서 빌린 돈으로 마련했을 게 뻔하다.


대선댁은 둘째가 막내를 미워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춘삼이가 일을 낼 때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발 없는 말은 천 리고 만 리고 순식간에 돌아다녔다. 소문이 빠를수록 둘째의 철물점에 찾아오는 손님도 빨리 떨어졌다.


이번에는 막지 못할 거라고 짐작했다. 둘째도 어릴 때는 제 동생을 아꼈는데, 월남에 다녀오더니 변했다. 월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늘 차가웠고 폭력적이었고 가족을 챙기는 마음도 없었다. 늘 돈을 말하고 돈을 찾았다.

대선댁은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둘째를 막을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교도소보다는 병원이 낫겠지.'

또 첫째의 신세를 져야 할 판이다. 둘째의 화를 누그러뜨리고 막내를 경찰서에서 데려오는 건 첫째 말고는 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하려면 막내는 결국 병원에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둘째가 막내를 교도소에 넣을 게 뻔하다. 둘째에겐 동생보다 돈이 더 중요했으니까. 또 눈물이 뺨을 적셨다. 그렇게 그녀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어릴 때 춘삼이는 누구보다 유순하고 착했다. 춘삼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 집에 소가 한 마리가 있었다. 대선댁의 소면 좋겠지만 빌린 소다. 이웃집의 소를 빌려 일을 시키는 조건으로 키워주고 먹여주는 것이다. 소 주인이 소를 판다고 할 때까지 소를 빌릴 수 있었는데, 그건 소 주인이 나이가 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춘삼이는 주말이면 두말없이 소를 끌고 산으로 들로 풀을 먹이러 다녔다.


더운 여름 어느 날이었다. 춘삼이는 풀이 많은 들판에 소를 묶어두고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멀리서 무엇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길 건너 냇가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일어나 앞으로 가며 귀를 기울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이 빠졌어요."

어느새 춘삼은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이웃 동네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굴리며 울고 있었다. "형, 저기 순애가 물에 빠졌는데 안 올라와요. 좀 "

아이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춘삼이는 물로 뛰어들었다. 순애는 누군가 버린 초망에 끼어 있었고 움직이지 않았다. 초망을 당겼더니 초망이 바위와 단단히 묶여 있었다. 초망을 손으로 찢어 겨우 발을 빼내 순애를 밖으로 빼냈다. 언젠가 교련시간에 배운 대로 가슴 부위를 압박하고 순애의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춘삼이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린 땀이 순애의 몸에 떨어졌을 때 순애는 기침을 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울고 있던 아이들은 울음을 그쳤다.

"순애야, 순애야, 니 괜찮나? 클 날뻔했다."

순애도 곧 울음을 그치고 춘삼에게 말했다.

"오빠야 진짜 고맙다. 오빠야 아니었으면 내 죽었을끼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춘삼이는 부산 철공소에 직장을 잡았다. 먼 친척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할 수 있었다. 원래 없던 집안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살림을 책임졌던 관계로 고등학교는 꿈도 못 꿨다. 그나마 3남 2녀 중 중학교라도 졸업한 사람은 춘삼이 유일했다.

삼 형제 중 가장 유순했던 춘삼이는 일머리가 있어 철공소 사장은 그를 아꼈다. 철공소 사장은 그 당시 사장치고는 드물게 인간적이어서 춘삼이가 일을 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다. 춘삼이도 일찍 철이 들어 버는 돈을 꼬박꼬박 모았고 명절 때마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드렸다.

춘삼이가 열다섯 살 됐을 때 큰 형님은 결혼을 했다. 형수는 열아홉이었다. 추석을 맞아 고향에 왔을 때다. 형수는 명절 음식 준비를 마치자마자 어디론가 갔다. 춘삼은 궁금해서 형님에게 물었다.

"형님, 형수 어데 갑니꺼?"

"밤마다 앞집에 간다 아이가. 재봉틀인가 뭔가 구경하러 간다. 그기 뭐 재미있다고 맨날 밤만 되면 가서 내는 맨날 독수공방한다. 기다리다 자고 있으면 슬그머니 들어오는데 언제 들어오는지 나도 모른다."

다음 날 형수에게 물었다. "형수요, 재봉틀 거기 그렇게 좋은교?"

"아이고 마 말도 마이소, 가마이 누워 있으마 재봉틀이 눈앞에 아른거리가 아무것도 못해요. 돈 마이 벌마 형님이 꼭 사준다 캤어예. 언제 살지는 몰라도 내 그날만 기다린다 아인교."

춘삼이는 부산으로 돌아가자마자 재봉틀을 사서 고향으로 보냈다. 마침 철공소 사장의 친구가 재봉틀 공장을 한 덕에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싸게 샀다. 가격은 춘삼이의 반년치 급여에 해당했다.


그런 춘삼이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1970년, 춘삼이도 다른 청년들처럼 영장을 받았다. 성인이 되면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를 그도 비켜나지 못했다. 군대 입대를 위해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갔다. 철공소 사장은 군대 가는 춘삼이에게 한 달 치 월급을 더 주며 전역하면 꼭 다시 여기로 오라고 했다. 춘삼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났다. "꼭 다시 오겠습니더. 사장님도 건강히 잘 지내십시오."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사장님의 딸 명자가 불렀다.

"춘삼이 오빠, 군대 가면 꼭 편지해야 해."

춘삼이는 명자를 돌아보고 웃었다. "명자야, 니도 건강하게 잘 지내라."


집에 온 춘삼이를 반긴 건 대선댁이었다. 막내아들을 보자마자 눈은 뜨거워졌고 눈물은 뺨을 적셨다. "우야노 우야노 군대가 무슨 말이고" 그녀에겐 군대는 소름 끼치는 곳이었다. 막내 시동생은 휴가 복귀하다 교통사고로 죽었고 월남전에 다녀온 아들은 차갑게 변했기 때문이다. 큰아들이 군대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때 그녀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었다. 누구보다 튼튼한 아들은 군대를 피하지 못했다. 아들이 군대 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밤잠을 설친 건 물론이고 밥맛도 툭 떨어져 원래부터 도드라진 턱 선은 날카로워졌다.


춘삼은 우는 엄마의 손을 잡고 가슴을 탕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엄마, 걱정 마라. 내가 누고? 엄마 아들아이가. 튼튼해서 군대 가는 기다. 건강하게 지내다가 잘 돌아오께. 편지도 자주 할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고 기다리라. 알았제? 눈물도 고마 흘리고..."


매거진의 이전글소설은 처음이라...<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