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처음이라...<삼대>

1화. 야구시합이 열리던 날

by 막시


소설을 한 번 써보려고요. 사람들은 글을 쓸 때 개요를 짜고 주제를 정한다고 하지만, 저는 대체로 쓰고 봅니다. 다 쓰고 난 다음 퇴고를 하면서 단락도 바꾸고 주제도 정하고 다시 수정하는 편이지요. 처음 쓰는 이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아직 어떤 방향으로 글이 전개될지 저도 모릅니다. 글을 쓸 때는 단편 소설처럼 쓰고 나중에 그 글들을 이어서 장편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글에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가명이고 지명도 모두 제가 만들었습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가감 없는 평가를 바랍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첫 이야기는 <야구 경기가 열리던 날>입니다.




1992년 가을, 그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빙그레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격돌했다. 빙그레는 일찌감치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정규 시즌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롯데는 삼성과 해태를 차례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승부는 의외로 싱거웠다. 박동희와 염종석이 활약한 롯데는 송진우와 정민철이 분전한 빙그레를 시리즈 전적 4 대 1로 꺾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선수가 부상으로 빠진 건 천운이었다. 그래도 정규 시즌 3위 팀이 우승 팀을 이긴 건 대단한 반전이었고 우승팀 선수들의 기쁨은 그만큼 더 컸다. 롯데 선수들이 MVP를 받은 박동희 선수와 강병철 감독을 헹가래 쳤을 때 어두운 시골 들녘에는 추수를 기다리는 누런 벼가 별빛에 반짝였다.


삼성 라이온즈는 일찌감치 탈락했건만 시골 아이들을 사로잡은 야구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이날도 아이들은 늦게까지 야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며칠 뒤 3학년 선배들과의 야구 경기를 앞둔 까닭이다. 그들은 3학년들과 고작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수시로 불려 가 두들겨 맞거나 기합을 받았다. 억울하고 아파도 그런가 보다 하던 시절이었다. 대신 그들은 야구 경기에선 무조건 이겨 나쁜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는 오기로 뭉쳤다. 진작에 해가 져 주먹만 한 공은 보일랑 말랑했지만, 평소보다 두 배나 밝은 달 덕분에 공을 치거나 공을 받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들이 더 이상 야구를 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시골버스는 막차가 있었고 집은 십 리도 더 되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세 달 전에 퇴원한 춘삼이는 이제 갓 마흔이 넘었건만,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미라처럼 뼈만 앙상했는데. 머리가 하얗고 등이 휜 노모가 없는 살림에 염소와 닭을 삶아 끼니마다 꼬박꼬박 해먹인 까닭에 지금은 살이 뼈를 슬쩍 덮었다. 노모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깃국을 가져올 때마다 춘삼이는 꾸역꾸역 먹었다. 입맛이 없기로는 병원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였건만, 어머니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컸다. 먹지 않고 숟가락만 쳐다보면 노모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춘삼이는 어머니를 보는 것보다는 숟가락을 움직이는 게 쉬웠다.


밥 먹을 때가 아니면 춘삼이는 말이 없었다. 가끔 노모가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을 뿐이었다. 왼쪽에서 보면 우는 듯하고 오른쪽에서 보면 웃는 듯한 그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내기란 해운대 앞바다에서 진주를 찾기만큼이나 어려웠다.

어쨌든 고기의 힘은 강했다. 병원에서 날아다닐듯한 밥과 푸성귀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어머니가 해주는 찰진 밥과 고깃국을 조금씩이라도 먹었더니 몸에서 조금씩 기운이 차올랐다.


퇴원 후 세 달이 흘렀다. 가을 추수가 한창이었고 춘삼이는 전처럼 하릴없이 빈둥댈 수만은 없었다. 집안일을 거들만큼 몸이 성하지는 않았지만, 큰 형님이 가을 추수로 힘들어하는 걸 뻔히 아는 까닭이었다. 어머니가 챙겨주는 아침을 먹고 들에 간다고 나서자 어머니가 막아섰다.

"그 몸으로 어디 간다꼬? 가마이 좀 있거라. 야야 니는 아직 일 안 해도 된다."

"어머니, 이제 괜찮구먼요. 그냥 나갔다 구경만 하다 오꾸마요."

그는 양팔을 꼭 붙든 어머니의 손을 겨우 떼내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날은 대운면에서 유일한 중학교에서 2학년과 3학년 간 야구 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바로 경기가 시작이라 아이들은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야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선배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겠다는 2학년 아이들의 눈에서는 레이저가 쏟아지는 듯했으나, 3학년들은 코웃음을 쳤다. 껌도 아닌 아이들에게 지겠냐는 말을 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조금씩 흔들렸다.


체육시간이 시작되자 체육 선생과 음악 선생이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죽이 잘 맞았는데, 심심할 때는 아이들을 못 살게 하고 심심하지 않을 때는 정의의 사도로 돌변해 아이들을 교화시키는 공통점이 있었던 까닭이다. 이래나 저래나 아이들은 그들 두 선생 때문에 힘들어했다. 가끔 야한 이야기를 해 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은 언제 선생들을 미워했냐는 듯 귀를 쫑긋하고 선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5교시 종이 울리자 두 선생은 아이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경기 시작을 호각으로 알렸다. 2학년 선발투수는 산이였다. 초등학교 때 공 던지기 선수를 한 경험으로 볼 스피드도 좋았다. 공부보다 야구를 더 좋아하는 까닭에 제구력도 꽤 좋아 일찌감치 선발투수로 내정됐다. 산이보다 더 나은 실력의 학생이 있기도 했지만, 선발투수가 된 건 산이가 다른 친구보다 공부를 좀 더 잘 한 덕이다. 그 시절엔 공부 좀 하는 아이가 반장도 하고 주장도 하고 선발투수도 하고 공격수도 했다.


막상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선 산이의 손에선 땀이 났다. 어깨에 잔뜩 힘을 넣어 초구를 던졌다. 손에서 살짝 미끄러진 공은 스트라이커와 거리가 멀었다. 엉뚱한 공에도 1번 타자는 배트를 힘껏 휘둘렀다. 의외로 잘 맞은 타구라 산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유격수가 손쉽게 잡아냈다. 운이 좋았다. 그다음부터는 볼이 제법 잘 들어갔고 사람을 팰 패기는 있어도 공을 때릴 실력이 없던 타자들 덕분에 손쉽게 1회가 마무리됐다. 수시로 후배들을 기합 주고 때리는 학교 건달 3학년들과 달리 2학년에는 초 중학교 시절 공 던지기 창던지기 선수만 넷이었고, 야구엔 크게 도움이 되진 않지만 대부분 육상 선수로 구성돼 있었다. 말하자면 규칙만 있는 링 위에 오르면 건달들 따위에게 질 실력이 아니었던 거다.


건달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2학년 아이들에게서 이전에 없던 기운이 느껴졌다. 1회부터 그들은 건달들을 두들겼다. 선배를 때릴 용기는 없어도 야구공을 칠 능력이 있던 까닭이다. 1회에만 3점을 내자 2학년 응원단은 난리가 났다. 공부시간엔 죽은 듯 없는 듯하다가 이럴 때는 유난히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이 어딜 가나 있는데 대운중학교 2학년에는 그런 아이들이 다섯이나 있던 까닭이다. 맞은편에 있던 3학년의 눈초리가 찢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했다.


산이는 2회에도 마운드에 섰다. 실투는 어김없이 호수비에 걸렸고 잘 던진 공은 후배들만 잘 패는 건달들이 치지 못했다. 2학년들은 2회 말에도 2점을 내 5 대 0으로 앞서갔다. 다음 회부터는 의외로 투수전이 펼쳐졌다. 준이는 4회까지 77개의 공을 던지고 무실점으로 막았다. 삼진은 무려 다섯 개, 유난히 운이 좋은 날이었다. 자기보다 실력이 좋지만 공부를 조금 못한 관계로 선발투수가 되지 못한 유격수와 중견수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내려왔다. 산이를 이어 실력은 산이보다 나은 유격수와 중견수가 남은 2회를 한 이닝씩 책임졌다. 둘은 건달들을 1 실점으로 막았다. 2학년은 2점을 더 추가해 6회까지 최종 7 대 1로 이겼다. 의외로 쉽게 이긴 건 유난히 따라준 운과 3학년들의 자중지란 덕이다. 교복 입은 건달들은 후배들에게 끌려가자 자기들끼리 싸우며 난리굿을 펼쳤다. 저들끼리 치고받고 하지 않은 건 자기들보다 더 건달 같은 체육 선생과 음악 선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구를 끝내고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즈음 춘삼이는 형님의 심부름차 집에 왔다 다시 들로 가는 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십여 미터 가는데 뒤에서 무엇인가 세게 부딪히는 순간 몸이 붕 떴다 가라앉으며 곧 정신을 잃었다. 아스팔트 위에 내동댕이쳐진 그의 머리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자동차 타이어가 굉음을 내며 미끄러지는 순간 들판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일어섰고 발 없는 말은 단번에 들판을 훑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도로로 모여들었다. 그중에서 누구보다 빨리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춘삼의 형님이었다. 뛰어가면서도 춘삼이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나고 있었다. 정작 가까이 다가가자 더럭 겁이 났다. 발걸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모여있는 사람들이 그를 보자마자 웅성웅성 댔다. "아이고 우짜꼬 아이고 우짜꼬, 이일을 우짜면 좋노..."

아니길 그토록 간절히 바랐건만, 길바닥에 누워있는 사람은 영락없이 춘삼이었다. 그는 춘삼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춘삼이는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았지만 그가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저 우는 것뿐이었다. 주위에는 이미 동네 아낙들의 울음소리가 자욱했다. 씨족 부락인 까닭에 그들 모두는 춘삼의 형님 아니면 형수, 그것도 아니면 아재와 아지매였다.


한 시간에 버스 한대씩 다니는 시골 동네에 종합병원이라고는 읍사무소에 하나뿐이었고 사고 현장에서 병원까지는 삼십 리였다. 시골 마을에 아직 자가용이 들어오기 전이라 춘삼이를 태우고 갈 차도 마땅치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뒤 한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그때 춘삼이의 심장은 이미 멈춘 뒤였다. 춘삼이의 형은 이성을 잃어 운전자를 패기 시작했는데, 운전자는 맞는 것 외엔 달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운전자의 얼굴에서 피가 나고 옷이 찢어졌을 때 동네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겨우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도로는 진작 엉망이 되었고 울음소리는 더 엉망진창이었다.


4회까지 완벽하게 틀어막은 산이의 얼굴엔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어느 때보다 목소리가 컸고 행동반경도 넓었다. 그러다 누군가 야구 이야기를 꺼내면 그 자리에 서거나 앉아 활약상을 만천하에 떠벌렸다.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화사한 모습으로 힐끗 쳐다보기라도 하면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날은 보충수업까지 있었지만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마치 야구 경기가 여전히 이어지는 듯 야구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 새끼들 죽을 상 봤냐?"라는 누군가의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복도를 지나가던 선생님의 주의를 받았지만, 주의는 주의에 그칠 뿐이었다. 아이들은 잠깐 조용했지만, 곧 소리를 높였다.


뒷자리에 앉은 녀석들이 열심히 야구 이야기를 하는데 담임선생님이 문을 열고는 산이를 불렀다. 선생님은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산이를 불렀다.

"따라와."

교무실엔 산이의 사촌 형이 있었다. 산이는 사촌 형이 여기 왜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혹시 할머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형이 덤덤하게 말했다. "산이야,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