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아이들 덕에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덜어요

아빠대신 효도하는 아이들

by 막시

작년 어버이날 때쯤이었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반일 휴가를 내고 학교 간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집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습니다. 라면을 먹으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모 기업의 기업 PR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홍보팀에 근무하고 있어 기업 PR 영상을 일부러 보는 게 저에게는 낯선 상황은 아닙니다. 영상은 40개월 미만 자녀를 둔 젊은 아버지들에게 아동 학습발달에 미치는 아빠의 역할이라는 명목으로 찍은 몰래카메라를 편집한 것이었습니다.


영상은 아빠들이 모니터가 있는 작은 룸으로 들어가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아빠들이 앉고 설문지 작성을 합니다. 질문지에는 이런 글이 써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나요?

당신 차에, 핸드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이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언제인가요?

그 글을 읽는 아빠들은 웃기도 하고 흐뭇해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 아빠들처럼 흐뭇해하며 혼자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요즘 아빠들을 너무 얕보는 건 아니냐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화면 자막에 이런 메시지가 떴습니다.


같은 질문에 대상만 바꿔서 다시 설문지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언제인가요?

당신 차에, 핸드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버지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아버지가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나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질문과 아빠들의 영상이 교차해서 나왔습니다. 처음에 아빠들은 먹먹해합니다. 그리고 울먹이지요.

저도 똑같았습니다. 갑자기 바뀐 상황에 어리둥절함은 찰나였고 먹먹해지며 같이 울고 있었습니다. 아빠들이 울음을 참고 울고 먹먹해하는 순간에 모니터에서 그 아빠들을 부르는 그들의 아버지가 나타납니다.

"○○이 아빠, ○○이 아빠, ○○이 아빠"

아빠들은 울먹이는 상태로 일제히 본인들의 아버지를 바라봤습니다.

영상에서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들이 본인들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의 기뻤던 마음과 아들을 가진 아버지들의 자부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모든 아빠들은 그 영상을 보며 다시 눈물을 쏟아내지요.

그리고 영상의 아버지들은 하나 같이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한 아버지는 화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속 부족한 게 부모 마음 아닐까요? 죽는 순간까지... 제가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계속 부족한 거예요."

그러면서 울먹입니다.

다시 장면이 전환되어 모니터 화면에 영상으로 나왔던 아버지가 방안에 있던 아빠들 앞에 나타납니다. 홀로 나타나는 아버지도 있었고 손주와 며느리를 데리고 나타나는 아버지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들을 안아주고 어깨들 두드리지요. 그렇게 영상이 끝났습니다.


저는 그 영상이 끝나고도 한참을 울었습니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울었지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제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를 태어나게 해 준 그 자체로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마음씨 좋은 아내와 결혼해서 너무나 예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날은 아주 이상한 징후가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체육시간에 3학년 선배들과 야구시합을 했었습니다. 마침 제가 선발투수였고 뿌듯한 마음으로 힘차게 공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던진 20여 개 야구공 중에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한 공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시에 워낙 야구를 즐겨하고 스트라이크를 곧잘 던지던 제가 그날은 스트라이크를 하나도 던지지 못했던 것이지요. 자신감은 급격히 떨어졌고 친구들의 실망 어린 눈빛에 더 이상 공을 던질 수 없어 자진 강판했습니다. 그 이후에 경기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유독 평소와 완전히 달랐던 제 모습, 그 기억만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야구가 끝나고 사촌 형이 학교를 찾아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야구를 하던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것이지요.

‘아버지가 잠시 내 곁에 머물렀을 텐데...’

저는 아버지가 제 곁에 잠시나마 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항상 이런 의문을 품고 살았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내 곁에 왔었더라면 왜 공을 잘 던지게 하지 않고 못 던지게 했던 것일까?’

저에겐 그것이 이십 년 간 풀리지 않는 숙제였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다시 그때 야구를 했던 날을 떠올리는 순간, 번쩍하며 납득할 만한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는 잠시 저를 보며 이별의식을 했을 것이고 어린 아들을 남겨둔 미안함과 슬픔으로 많이 울고 계셨으리라.’

문득 그런 생각에 이르렀을 때 저는 왜 공이 그렇게 엉뚱하게 날아갔는지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많이 슬펐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편히 쉬세요.’

제가 제사 때마다 아버지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 영상으로 슬펐던 마음을 추스르고 ‘오늘은 촌에 가서 어머니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어야겠다. 자는 모습도 보고 안아드려야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다짐은 했지만 세상의 많은 아빠들처럼 어머니에게 세상 무뚝뚝한 아들입니다. 아이들에게는 항상 사랑을 표현하지만 어머니에게는 표현을 잘 못 합니다. 안 해봐서 그렇겠지요. 하려고 해도 참 쉽지가 않습니다.

어머니는 큰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몸이 성치 않으셔서 큰어머니가 보호자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큰어머니도 어릴 때부터 저의 보호자여서 큰어머니도 제게는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키워준 어머니이신 거지요.

아이들이 하교를 하고 짐을 챙겨 고향에 내려갔더니 제법 늦은 시간에 도착하게 됐습니다. 큰어머니가 전복닭백숙을 해놓으셔서 우리들은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날 딸은 유난히도 맛있다는 말을 연신 해대며 큰할머니가 주는 닭고기를 주는 대로 먹어치웠습니다. 딸은 잘 먹는 것으로 할머니를 기쁘게 했습니다. 상을 치우고 났더니 아들은 본격적으로 자기 차례라는 듯이 할머니에게 애교를 떨었습니다. 장난을 치고 웃기기도 하고 본인도 웃는 상황을 무한 반복으로 연출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나 잘 놀던지 아들이 너무 고마웠고 뭉클해졌습니다. 아빠가 못하는 것을 아들이 대신해주고 있었으니까요.

그날 저는 어머니와 아들의 사진을 참 많이도 찍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어머니의 동영상은 그날 처음 촬영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저를 낳아주셨지만 키우는 데는 아무런 역할도 못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늘 어머니에게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유일한 자식인데 어머니를 모시고 살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아들과 함께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의 빚이 조금은 덜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끔 어머니가 좋아하는 액세서리를 사 드리곤 하지만 손자의 웃음에는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한 번씩 어머니를 찾아 내려가고 할머니를 즐겁게 하는 아들과 즐거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마음의 짐을 덜고 올라옵니다. 이렇게 귀엽고 애교 많은 아들이 없었으면 제 마음의 짐은 어떻게 덜어낼 수 있었을까요?

어머니의 동영상을 담은 다음날 저는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집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가끔씩 그 동영상을 봅니다.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지는 저를 느낍니다.


재작년 연말에는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촌누나들과 한 해의 마지막 날을 함께 하자고 의기투합했고 시간이 되는 가족들이 구미에 있는 사촌누나 집에서 모였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큰어머니, 사촌 누나 세 가족과 우리 가족이 함께 모였습니다. 우리는 그 당시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영화 <신과 함께>를 봤습니다. 그 영화는 열세 명이 함께 봐서 제 인생에서 많은 가족들과 함께 본 영화로 기억될 것입니다. 사촌누나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던 것 같습니다. 저도 물론 중간중간 눈물을 흘렸지요. 그리고 부모님에 사랑도 느꼈고요. 누구는 그런 억지춘향식의 설정과 내용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런 영화가 좋습니다. 온 가족 영화 관람을 기획한 것도 그 영화를 선택한 것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영화만 봤던 것은 아닙니다. 하이라이트는 아이들이 할머니께 선물을 준비한 것입니다. 연말 아이들이 차곡차곡 모았던 돼지 저금통을 헐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 저금통을 헐어서 할머니, 외할머니, 큰할머니께 선물을 하나씩 하자고 제안했지요. 아이들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아이템은 아내가 정했습니다. 외할머니와 큰할머니께는 립스틱을, 친할머니께는 스킨로션 세트를 사드리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의 저금통을 깼더니 4만 원 정도가 나왔습니다. 모자라는 돈은 엄마 아빠가 보태기로 하고 화장품 가게에 가서 큰할머니와 외할머니의 빨간 립스틱을 사고 할머니의 스킨로션을 샀습니다. 당연히 선물은 아이들이 전달했지요. 할머니는 기뻐했고 우리는 뿌듯했습니다. 아이들은 조금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할머니들이 고마워하며 칭찬했으니 덩달아 기뻐했습니다. 그때 화장품을 사는데 쓴 돈이 모두 십만 원은 했을까요? 십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3대가 기쁘고 조금은 뭉클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가능하면 연말은 고향에서 아이들의 할머니들과 보낼 생각입니다. 3대가 함께 영화를 보고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를 위한 작은 선물도 준비하고요.

예전 어느 책에서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효는 부모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편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부끄럽게도 저의 마음을 들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렇게라도 하며 어머니에 대한 마음의 빚을 조금씩 덜어야겠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아이들이 정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애교 많은 아들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지요. 그래서 더 고맙고 기특한 아들입니다. 앞으로도 아들 덕 좀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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