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한 아이
저는 살아오면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늘 누군가를 도와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웃을 도우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렇게 하길 바랍니다. 남을 위한 가장 좋은 도움은 노력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을 수리해주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씻어주거나 고아원 등을 찾아다니며 청소를 하는 것 등이지요.
제가 활동하는 마라톤 동호회에 저보다 한 살 어린 회원이 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집수리 자원봉사를 하고 있지요. 그 회원의 후기를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가끔은 그런 이상적인 나눔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쉽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남을 돕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쉬운 나눔은 바로 소액 기부입니다. 제가 기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만족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내가 사회를 위해 작은 나눔이지만 실천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으니까요. 저의 작은 나눔의 행동을 아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후원단체에서 보내주는 분기 보고서를 보며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가끔 이야기했으니까요.
이런 저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달됐을까요? 어느 주말 동네 나들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딸이 저에게 기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빠, 나 해외 아이 후원하고 싶어."
"우리 딸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냥 그러고 싶어서."
딸아이가 기부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우리 딸이 마음이 따뜻하게 잘 자라고 있구나.'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딸로 자라고 있어서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해외 아이 후원하고 싶어.”
제가 알기로는 해외 아동 지정후원을 하려면 매달 3만 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딸의 한 달 용돈이 4만 원입니다. 한 달 용돈이 4만 원인데 3만 원을 후원하면 본인은 1만 원 밖에 안 남습니다. 한 달 동안 생활이 될까요?
다시 딸과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딸, 그런데 해외 어린이 지정후원을 하려면 매달 3만 원을 해야 하는데, 너 용돈이 매주 1만 원인데 가능해?"
"아빠가 용돈 올려주면 되잖아."
"딸, 그러면 그건 아빠가 후원하는 거지, 네가 하는 게 아니잖아."
딸은 아무 말도 못 하더군요.
"그리고 한번 지정후원을 하면 그 아이에 대한 정보가 계속 너한테 와. 그래서 지정후원은 한번 하면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후원해야지 중간에 끊으면 그 아이한테도 미안하잖아.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아빠는 너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좋겠어."
딸아이가 제 말을 그때 바로 납득하지는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 제법 시간이 흐른 후에 말하더군요.
“아빠, 매달 만원씩 후원할게”
딸아이와 다시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어디에 후원하면 좋을까? 아빠가 하는 초록우산에 할까?"
"아니, 딸은 다른 곳에 하면 좋겠어. 초록우산은 아빠가 하고 있으니까 너는 다른 곳을 찾아봐."
아이와 함께 '기부'라는 키워드로 검색했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유니세프, 굿네이버스처럼 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곳부터 조금은 생소한 세이브더칠드런 같은 다양한 기부단체가 검색됐습니다. 딸은 이것저것 보더니 굿네이버스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딸이 꼼꼼하게 본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굿네이버스의 이름이나 로고가 마음에 들었을 겁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들었던 단체라서 익숙하기도 했겠지요. 후원단체들의 사업은 비슷해서 저도 아이에게 어디를 하든 좋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딸의 통장으로 계좌이체를 하는 것으로 후원 등록도 마쳤습니다.
그렇게 딸이 본인 이름으로 기부를 한지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기부를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딸 이름으로 후원증이 나왔습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도 작은 인증서, 카드, 상장 같은 작은 증명서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낍니다. 우리 딸도 자기 책장에 고이 간직해놓더군요. 기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기부를 하고 기부증서를 받아 뿌듯해하는 딸의 모습에 흐뭇함을 느꼈습니다.
한 번은 우연히 딸이 쓴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주제의 글이었습니다. 딸은 평생 모은 돈을 학교에 기부한 김밥 할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써놓았더군요. 딸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일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쓰고 싶은 사람이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배우도 있을 테고 좋아하는 선생님도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인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모모’를 썼을 수도 있었을 테고요. 그런데 딸은 평생 모은 돈을 학교에 기부한 김밥 할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쓴 거지요.
제가 얼마나 흐뭇했겠습니까? 제가 생각해도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답, 아빠가 바라는 정답을 써놓았으니까 말이죠. 제 딸이지만 참 마음이 따뜻하게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한 번은 이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따뜻하게 자라는 아이가 나중에 자라 ‘한비야’님처럼 오지를 다니며 구호활동을 한다고 하면 어쩌지? 참 좋은 일인데 살짝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반대를 할 수도 없고 찬성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 생기는 거지요. 그러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는 마음으로 더 이상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딸이 지금 되고 싶어 하는 수의사가 되어 지금의 따뜻한 마음으로 아픈 동물을 많이 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 애교 담당인 아들도 누나 못지않게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의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된 건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서였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면 선생님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 구분 없이 말이지요. 그러다 보니 가끔은 아이들 돌보느라 아이들 학습지도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선생님은 <또래 치료사>를 도입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또래 치료사>를 처음 듣게 된 우리 부부에게 “또래 치료사는 친구들의 작은 상처를 치료해주는 의사와 간호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학기 초 <또래 치료사> 선발을 위해 아이들에게 <또래 치료사>할 사람 손들라고 했더니 다섯 아이 정도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중에 남자아이는 우리 아들 혼자였고요. 가위 바위 보로 최종 한 명의 <또래 치료사>를 정했는데 아들이 1등을 해서 선정됐다고 합니다. 아들이 <또래 치료사>를 하고 싶어 한 것도 신기했고 남자아이들 중에 혼자 손든 건 더 신기했습니다. 선생님은 아들이 지금도 <또래 치료사>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도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또래 치료사>의 역할이 누군가를 돕는 거잖아요. 그런데 아들이 그것을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고요. 저는 어릴 때 그런 생각을 안 해봤거든요. 그래서 ‘이 아이는 누구를 닮았나?’라는 생각도 들고 기특하기도 했지요.
여담이지만 부모라면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은 꼭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우리 아이의 반을 책임지는 선생님을 모른 채 살아가는 건 부모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 일수는 없으니까요. 부모가 내 아이와 내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면 결국 그 마음이 우리 아이로 향할 것입니다.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많지는 않습니다. 부모나 교사 모두 자주 만나는 것이 서로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그래서 내 아이가 잘 되길 바라는 부모라면 한 학기 한번 있는 공식적인 학부모 상담은 꼭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처럼 제가 몰랐던 아이의 모습을 알게 되는 행복을 누릴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집 남매들은 수시로 싸웁니다. 안 싸우고 크면 좋겠지만 그건 저의 희망사항이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과자를 살 때 누나는 동생 과자를 챙기고 동생은 누나 과자를 챙깁니다. 생일 때는 서로의 생일선물을 알뜰히도 챙기지요. 그뿐 만은 아닙니다. 친구의 생일날 선물도 챙기고 해외여행이라도 나가면 친구 선물도 사자고 합니다. 이런 아이들의 요청을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아주 작은 거라도 사서 아이들 가방에 넣어두지요. 그럼 아이들은 그걸 뿌듯하게 갖고 갑니다.
혹자는 이걸 아이들이 자랑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저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이 순수하게 이야기하니까요. 한 번은 아들이 학교에 다녀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이번에 친구가 외국에 다녀왔는데 젤리를 하나 줬어. 친구들한테 하나씩 다 줬는데 진짜 맛있었다.” 그러면서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채로 말이죠.
앞으로도 아이들이 늘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유지한 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단지 우리를 기쁘게 하는데 그치겠지만 나중에 어른이 되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남을 도우면 분명히 본인 스스로도 뿌듯하고 그게 결국 행복으로 연결되거든요. 아이가 누군가를 돕고, 그러면서 스스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면 아빠인 저는 저절로 흐뭇해집니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흐뭇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 부모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