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제2의 어린이날
저는 기독교나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늘 설레는 마음이 있습니다. 1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로 꼽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와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산타 할아버지, 화이트 크리스마스, 캐럴이 떠오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친구나 연인과의 크리스마스 파티, 영화가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크리스마스도 나이가 들면 체력이 감소하는 것처럼 설렘도 점점 바래집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릴 때는 어린 마음에 크리스마스가 특별했고, 청소년 시절에는 친구들과 놀아서 즐거웠습니다. 아내와 연애를 할 때는 달달한 두근거림이 있었지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는 크리스마스의 특별함이 조금씩 퇴색됐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고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아이가 조금 자라서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 산타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을 때 크리스마스는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살아났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크리스마스는 해마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해마다 더 기대되고 재미있는 날이 됐습니다.
첫째가 네 살이 됐을 때 크리스마스는 예전의 익숙함을 완전히 벗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우리 가족을 찾아왔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딸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고 작은 파티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럴 음악도 틀고 케이크에 촛불도 붙였습니다. 아이에게 촛불을 끄라고 하고 함께 손뼉을 쳤습니다. 아이도 웃고 우리도 웃었습니다. 그렇게 이브를 이브답게 보내고 크리스마스 아침 일찍 딸에게 말했습니다.
"서영아,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셨나 봐. 선물이 있어."
딸은 쏜살같이 뛰어와 선물을 뜯어보았습니다.
"우와, 뽀로로다."
우리가 딸을 위해 준비한 첫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은 뽀로로 컴퓨터였습니다. 학습이 되고 놀이도 되는 작은 게임기였습니다. <뽀통령>이라는 말이 있듯이 뽀로로는 딸의 로망이었습니다. 한동안 뽀로로 컴퓨터로 그림 맞추기 놀이도 하고 장보기 게임도 하던 딸아이의 모습이 다시 떠오릅니다.
딸은 다섯 살이 됐을 때 본격적으로 산타 할아버지를 알게 됐고 캐럴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에는 둘째도 태어나 우리 가족은 셋에서 넷이 됐습니다. 딸은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자기가 받고 싶은 선물도 말했습니다.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를 알게 되면서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딸은 잠을 참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고 자는 사이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 갔다며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그런 표정 하나하나가 예쁜 건 우리가 엄마 아빠라서 그렇겠지요?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것도 작지만 즐거운 재미였습니다. 비록 작은 트리였지만 밤에 불을 끄면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였고 불빛이 변할 때마다 아이가 손뼉 쳤고 우리는 한없이 뿌듯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지요.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요.
저는 딸이 여섯 살이 됐을 때부터 가족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준비했습니다. 모든 선물처럼 편지나 카드도 받는 사람 못지않게 주는 사람도 기쁩니다. 카드나 손편지를 쓰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좋았던 기억을 한 번씩 돌아보는 저만의 시간이 됐으니까요. 편지를 쓰면서 우리 가족이 한 해를 잘 마무리하게 됐음을 감사히 여겼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손편지를 썼습니다. 연애편지를 쓰듯이 정성스럽게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아내에게 편지를 쓸 때는 연애편지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연애할 때는 사랑하는 감정만 들었지만 지금은 고마운 마음도 함께 듭니다. 조금은 사랑이 성숙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들이 일곱 살이 되고 글자를 쓸 수 있게 됐을 때 처음으로 온 가족이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손편지를 썼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쓰고 우리 부부도 서로에게, 아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 후에는 편지 낭독식도 했습니다. 아이들도 감정이 풍부해지고 이해력도 좋아져 편지를 들으며 웃기도 하고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아이의 편지를 들으며 웃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딸의 아기자기한 그림과 깜찍한 이모티콘에 즐거웠고 아들의 자기만의 창의적인 그림편지에 흐뭇했습니다. 아들의 그림편지는 본인만 아는, 그래서 해석이 꼭 필요한 편지였습니다.
작년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더니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면 다양한 친구들이 있으니 그중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어서겠지요. 반면에 여전히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친구들도 있을 테니 믿는 마음 반, 믿지 않는 마음 반이었습니다.
한 번은 아이가 "엄마 아빠, 산타 할아버지는 원래 없대."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산타 할아버지는 있다고 이야기했고 초등학교 5학년 딸은 무심코 "이제 알았니?, 엄마 아빠가 산타 할아버지야."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눈짓으로 그만 말하라고 이야기하고 아들에게 "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있단다. 누나는 널 놀리려고 장난을 친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딸을 따로 불러 이야기했습니다. "서영아, 아빠는 서준이가 좀 더 오래 산타 할아버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엄마 아빠는 너에게도 오래 산타 할아버지를 지켜주었단다. 그리고 중요한 것, 너도 산타 할아버지를 믿지 않으면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없을까?"
그러자 딸은 정색하며 대답을 했습니다.
"있어, 있어."
그리고는 딸도 동생의 크리스마스를 지키는데 동참했고 동생의 크리스마스를 지킨 1등 공신이 됐습니다. 저와 아내는 진심으로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산타 할아버지를 좀 더 오래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그게 동심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런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2학년이 되는 아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첫째인 딸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산타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누나가 있는 동생은 조금 더 빠릅니다. 이럴 때는 빠른 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은 시기를 가리지 않고 자기가 갖고 싶은 선물이 생겼을 때 산타 할아버지 타령을 했습니다. 자기 생일과 어린이날이 있는 5월까지는 본인의 생일과 어린이날에 선물 찬스를 쓰지만 5월이 지나면 산타 할아버지 찬스밖에 없으니 6월부터는 늘 산타 할아버지를 입에 달고 다녔지요. 그래서 우리 가족은 6월부터 매달 한 번씩은 ‘산타 할아버지’를 찾는 아들의 모습을 봅니다.
아들은 가끔 엄마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산타 할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선물을 줄까? 나는 받고 싶은 걸 그냥 말만 했는데 진짜 줬어, 진짜야. 와, 진짜 신기해"
옆에 있는 딸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어쩔 줄 몰라했었지요. 하지만 동생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면 본인도 크리스마스 선물이 없으니 참습니다. 딸이 옆에 있지만 우린 늘 태연하게 말합니다. 그럴 땐 딸은 웃음을 참기 힘든지 슬그머니 자리를 뜨기도 했었지요.
"서준아, 산타 할아버지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아는 능력이 있지 않을까? 어린이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도 아는 것처럼 말이야"
그럼 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 그러네."
또 가끔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는 이렇게 말할 때도 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이 바뀌었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바뀐 내 마음을 알아줄까?
우리의 대답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미리 준비를 해놓았을 경우와 아직 준비를 하지 않았을 경우이지요.
미리 준비했을 때는 이렇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벌써 아이들의 선물을 다 준비했을 것 같은데?"
아직 준비하지 않았을 때는 이렇지요.
"그러면 오늘은 자기 전에 산타 할아버지에게 네가 원하는 선물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해봐. 그런데 뭐로 바뀌었어?
작년에는 아들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 원래는 팽이였잖아. 그런데 공룡 메카드를 받고 싶어."
둘 다 장난감입니다. 하지만 늘 이것도 받고 싶고 저것도 받고 싶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하나만 선물해준다는 것을 알지요. 크리스마스가 임박하면 늘 행복한 고민이 깊어지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함께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엄마 아빠입니다.
아들이 태어난 후 우리 가족 크리스마스의 하이라이트는 이웃사촌들과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입니다. 크리스마스에 날개를 장착하게 된 것이지요. 네 가족으로 구성된 우리 이웃사촌은 해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홈 파티를 하고 있습니다.
이웃사촌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를 그려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고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습니다. 케이크 위에 빛나는 촛불, 아이들의 웃음소리, 맛있는 음식 냄새와 엄마 아빠들의 기쁘고 즐거운 표정이 어울려 완벽한 행복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네 가족, 가족 당 네 식구이니 열여섯 명이 펼치는 환상의 하모니 자체였습니다. 저는 우리들이 펼치는 이웃사촌과의 파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인 크리스마스 파티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제가 모든 엄마와 아빠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이웃사촌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진심을 담아 카드를 쓸 때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더 기뻤던 것은 편지를 받고 그분들이 보여준 반응이었습니다. 이웃사촌들이 얼마나 좋아했고 엄마들의 감성이 얼마나 풍부했던지 저는 잠시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크리스마스 파티의 공식은 조금씩 변했습니다. 첫해에는 아기들의 울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크리스마스 파티부터 아기는 아이가 됐고 울음은 애교만점 노래로 바뀌었습니다. 기저귀와 내복만 입던 아이들은 각양각색의 공주 옷으로 갈아입고 패션쇼로 엄마 아빠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들이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에 폴짝폴짝 뛰기도 했고 서로 함께 놀면서 더없이 즐거워했습니다. 즐거운 아이들과 그걸 보는 엄마 아빠들의 모습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이 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회를 거듭할수록 아이들은 자라 어느덧 초등학교 고학년도 생기고 제일 어린아이를 제외한 전원이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도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되고요. 2011년부터 시작된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우리 아들이 태어난 그 해부터 시작했으니 아들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중학생만 되어도 크리스마스를 친구들과 보낸다고 하겠지요. 그 생각을 하니 조금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는 성장하고 독립한다고 생각하니 또 아이들이 든든하기도 합니다. 이제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니 앞으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없어도 크리스마스 캐럴은 있는 우리 집, 산타 할아버지는 없어도 가족끼리 작은 선물은 나누는 집, 아이들의 애교는 없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크리스마스 카드는 있는 집, 그래서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며 미소 짓는 우리 집, 그래서 늘 특별한 행복이 가득한 우리 집 크리스마스를 상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