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어버이날이 익숙지는 않지만...

부모가 되고 특별해진 날

by 막시

부모가 되고 나서야 특별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날은 바로 어버이날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어버이날이 어색합니다. 아이들이 둘 다 초등학교에 다니지만 어버이날 아이들의 고마움을 받아야 할 아빠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갈 길이 먼 초보 아빠라서 그런 생각이 드나 봅니다. 언제쯤 어버이날 아이들에게 받는 감사의 인사말이 자연스러울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초보 아빠이긴 하지만 어버이날 아이들의 손편지와 우리 부부에게는 생화보다 더 예쁜 수제 종이 카네이션을 받으면 '벌써 우리 아이들이 이만큼이나 자랐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흐뭇해집니다.


처음 딸이 어버이날에 그림편지를 가져왔을 때는 유치원에 다니던 때였습니다.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과 그림편지를 가져왔었지요. 물론 그때는 글자가 익숙하지 않아 글의 내용은 없었습니다. 엄마, 아빠를 포함한 몇 개의 글자와 꽃그림 정도가 있었지요. 그때까지는 내용을 갖출 만큼 자라지 않아 어린이집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썼을 것입니다.

처음 아이가 주는 손편지를 받는 기분은 어땠을까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를 번쩍 안아 올리며 힘껏 안아줬지요. 뽀뽀세례도 마구 마구 퍼부으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우리 귀염둥이 벌써 이만큼 자란 거야?, 너무너무 예쁘구나."

고슴도치 엄마 아빠는 어색한 마음 한편으로 세상에 없는 특별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어버이날 우리 부부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것은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부터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어버이날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고 아이들도 본인의 감정을 제법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니 그렇겠지요. 딸이 5학년이 됐으니 우리 집에 어버이날이 행사가 된 것도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작년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버이날은 두 배로 특별한 날이 됐지요.

아들은 본인이 초등학생이 되었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줬습니다. 어버이날 저녁 아들은 태권도에서 배웠다면서 우리 부부에게 번갈아가며 발 마사지를 해줬습니다. 발 마사지는 그냥 손으로 주무르는 게 아니라 엄마와 아빠를 엎드려 눕게 하고는 자신의 발로 엄마와 아빠의 발을 밟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체중이 있다 보니 아들의 마사지가 꽤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발 마사지의 묘미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아들의 춤이었습니다. 아들은 그냥 발 마사지를 한 것이 아니라 리듬에 맞춰 다리를 움직였고 손을 흔들며 춤을 추듯 마사지를 했습니다. 그러니 마사지를 받고 있을 때보다 아내가 마사지를 받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볼 때가 더 기분 좋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라 사진 찍는다고 하면 포즈도 잘 취하고 웃기도 잘하는 매력 만점에 백 점짜리 아들이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흐뭇해지는 장면입니다.

어버이날 아이들은 효도 쿠폰을 가져왔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숙제로 나눠준 것이지요. 효도 쿠폰은 집안일하기, 심부름하기, 마사지하기, 뽀뽀하기, 자유이용권 같은 엄마 아빠가 좋아할 만한 미션들로 가득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효도 쿠폰입니다. 아이가 이 효도 쿠폰을 처음 갖고 왔을 때는 정말 신기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고는 "이야 이거 좋네, 선생님들 훌륭하시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학교와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이 주는 효도의 종류가 다양해졌으니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그 효도 쿠폰을 가져온 아이들의 행동은 어땠을까요?

초등학교 1학년들이 선생님 말을 잘 듣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들이 미션을 수행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상상이 될 것입니다. 뽀뽀하자고 하면 쫓아와 뽀뽀했고 휴지를 주며 휴지통에 버리라고 하면 좋아하며 가져가서 버렸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사인을 받았지요. 어깨 주무르기 같은 것은 엄마와 아빠에게 다 해야 숙제가 완성된다며 열심히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는 아빠를 붙잡고 마사지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 귀여운 목소리와 말투로 물었습니다.

"아빠, 띠원해(시원해)?"

어떻게 안 시원할 수가 있겠어요?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면 가끔은 간지러워 웃음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 웃음이 좋아서 나는 웃음인지 간지러워 나오는 웃음인지 사실 구분이 안 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웃음이 좋아서 나는 웃음이라 여겨 더 열심히 주물렀는데요, 그 모습도 얼마나 귀엽던지요.

자유이용권은 말 그대로 엄마 아빠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니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주로 스킨십에 사용했습니다. 뽀뽀해 달라 하고 안아달라고 했습니다. 그게 제일 좋으니까요. 아이는 미션 달성이 더 중요하니 건성으로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다시 아이를 붙잡고 으스러지게 안거나 제대로 쪽 소리 나게 뽀뽀를 했지요. 아빠는 아이와 스킨십을 해서 좋고 아이는 숙제 하나 완성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효도 쿠폰의 유효기간이 제법 길었습니다. 하루에 다 안 써도 됐던 거지요. 보름 정도 동안 아이의 효도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마치 놀이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이에게는 교육이 되고 우리는 기쁨이 되는 놀이였지요. 올해 처음 효도 쿠폰을 사용한 아들은 엄마 아빠가 효도 쿠폰을 안 쓰면 빨리 효도 쿠폰을 쓰라며 안달했습니다. 아이가 그걸 하자는 모습도 우리에게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일부러 효도 쿠폰 사용을 아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숙제를 하는 기쁨도 크고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숙제 검사를 할 것이니 유효기간에 내에 다 사용했습니다. 효도 쿠폰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버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이들의 손편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제대로 된 편지를 쓰기 시작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용도 갖춰집니다. 형식과 내용에서 엄마 아빠를 들었다 놨다 하는 마법을 보이는 거지요. 아이들의 애교와 효도 쿠폰과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효도 쿠폰과 애교가 기쁨으로 와서 즐거움을 만들어 냈다면 아이들의 편지는 진지함으로 와서 고마움을 만들어 냈습니다. 어버이날 아이들이 준 편지에는 항상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첫째도 그렇고 둘째도 그렇습니다.

"낳아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문장을 볼 때마다 흐뭇한 마음보다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큽니다. 내 아이로 태어나서 고맙고 잘 자라줘서 고마우니까요. 그리고 이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편지는 저를 돌아보게도 했습니다.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행 갈 때 떼쓰고 토해서 죄송해요."

딸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때 유난히 자동차를 타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차 안에서 언제 도착하냐고 끊임없이 묻고 수시로 토했습니다. 아이가 그럴 때는 제대로 된 처방을 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다그치고 참기만을 강요했습니다. 사실 그때는 그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의 편지를 다시 보는데 저의 허물이 보였던 것이지요. 아이가 떼쓰고 토한 데는 아이의 잘못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깨우친 거지요. 그래서 어느 날 저녁에 딸에게 사과했습니다.

"서영아, 옛날에 네가 어버이날 감사편지를 썼을 때 떼쓰고 토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단다. 아빠가 생각해보니 그건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아빠가 네게 사과할 일이더구나. 미안하다."

그랬더니 딸아이는 또 평소대로 쿨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 그래? 나는 기억도 안 나는데? 그리고 그때 준 편지는 그때 읽고 접어놔야지 다시 읽는 건 반칙이야."

아이의 쿨한 모습에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지금처럼 아빠의 잘못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도록 아이의 감정 계좌에 더 많이 입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아이의 편지에서 제가 정말 기분이 좋았던 문구는 이겁니다.

"내가 크면 엄마 아빠 집에 자주 놀러 올게요."

그 편지를 읽으면서는 아이들과 기차 타고 고향에 내려갈 때가 생각났습니다. 딸과 제가 같이 앉고 아내와 아들이 같이 앉았지요. 딸과 대화를 하는 중에 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서영아, 서영이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 집에 얼마나 자주 올 거야?"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매일 올 거야, 가까운데 살 거야."

그때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아이는 편지에서 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과 글의 느낌은 또 달랐습니다. 말은 놀랍고 기쁨이었지만 글은 마음의 울림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 여건이 되어 근처에 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인생이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요. 아이는 외국에서 살 수도 있고 같은 한국이지만 멀리 제주도에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를 늘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부모로서 어떤 아쉬움도 없을 것입니다.

아이가 지금처럼 우리와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길 기대해봅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의 손편지가 그럴까요?

평소에 늘 반말하는 아이들이지만 편지에는 꼭 존댓말을 씁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죄송해요, 될게요, 좋아요, 건강하세요.

아이들의 편지는 꼭 이런 글로 문장을 마칩니다. 첫째도 그렇고 올해 처음 글자 편지를 준 아들도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안 쓰는 말이지요. 존댓말 덕분에 아이들의 손편지가 더 진지하게 다가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쓰는 아이들도 진지하고 받는 엄마 아빠도 진지해지는 거지요. 무엇을 쓸까 고민해서 한 문장 쓰고, 또 고민해서 한 문장 써서 한 장의 편지를 완성해내는 아이를 상상해봅니다. 어느 날 보다 기특하고 훌쩍 자란 아이의 모습입니다.

앞으로 맞을 어버이날은 어버이에 익숙해지는 삶이 되겠지요? 아직 더 보여줄 아들의 효도 쿠폰이 있고 더 진심을 담아 우리를 감동시킬 딸의 편지가 있어 더 기대가 됩니다. 아이의 편지를 보며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나를 돌아보고 아이의 현재 생각과 미래의 모습을 헤아릴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어버이날 편지는 짧지만 버릴 건 하나도 없는 완벽한 편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께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노력할게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친구랑 사이좋게 지낼게요.

엄마 아빠 건강하세요.

그리고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준 올림


아들이 올해 준 첫 번째 어버이날 손편지, 버릴게 하나도 없는 완벽한 편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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