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은 가족이 태어난 날
저는 2006년 6월 24일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식이 있던 그날 새벽에는 2006년 독일 월드컵 한국 VS 스위스전이 있었지요. 한일월드컵 4강을 했던 다음 월드컵이라 월드컵의 열기는 한일월드컵에 못지않게 뜨거웠습니다. 축구경기를 보느라 결혼식에 참석 못한 친구도 있었지요. 그 친구는 결혼식 끝나고 결혼식에 참석 못 해 미안하다고 연락 오기도 했습니다. 지나고 나니 그런 일조차 결혼식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추억이 됐습니다.
12년이 지난 올해 결혼기념일에는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vs 멕시코전이 열렸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멋진 골을 성공시켰지만 경기는 졌지요. 대신 예선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은 2:0으로 멋지게 승리해했지요.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된 월드컵이었습니다. 월드컵이 열리면 항상 결혼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저의 결혼기념일은 4년마다 더 특별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2006년 그리 오래되지 않은 느낌인데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딸과 아들이 태어났고 두 아이는 벌써 12세, 8세가 됐습니다. 둘이 만났는데 둘이 생겨 이젠 넷이 됐으니 확실히 덧셈의 삶을 살았네요.
저는 한 해 중에서 한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날은 생일이고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날은 결혼기념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부는 결혼을 해서 가족이 되고 아이들은 부모가 결혼을 해서 태어나니까요. 그래서 결혼기념일은 한 가족이 태어난 날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는 저의 자세는 '몇 년이 지난 후에라도 지난 결혼기념일을 돌이켜봤을 때 생각나는 날, 의미 있는 날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인의 생일을 소중히 생각하고 의미 있게 보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생일인 결혼기념일도 소중히 생각하고 의미 있게 보내야 된다는 생각으로요.
결혼기념일은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로맨스가 느껴지는 날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법 자라 초등학생쯤 되면 부부간의 로맨스를 만들 여건이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 아이들이 어리면 일찍 재우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 텐데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부모보다 일찍 자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집은 로맨스가 옅어지지요. 세상 모든 부부들이 이런 과정을 겪게 되고 저는 이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된 작년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이렇게 한번 자문해봤습니다.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날로 만들어볼까?’
자문하면서 곧바로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 1학년이 되었으니 둘 다 결혼에 대해 알 나이가 됐다고 생각했지요.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에 대해 알려주고 결혼기념일은 생일처럼 축하해주는 날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결혼기념일로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에게 밑밥을 깐 거지요. 식사를 할 때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때 어떻게 축하를 할 건지, 축하 편지는 쓸 건지 물어봤습니다. 아들은 누나를 보고 따라 하니 딸에게 결혼기념일은 엄마 아빠가 축하받는 날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서영아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 곧 다가오잖아.
서영이 서준이가 엄마 아빠를 위해 축하편지를 준비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는 건 어때?
간단하게 빵을 준비하는 것도 좋아.
딸의 고민을 덜어주고 우리 부부가 원하는 것을 알려준 것이지요.
며칠 후 결혼기념일 전날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1박 2일 여행을 했습니다. 결혼 기념 여행이었던 셈이지요. 아들과 딸은 각자 역할을 분담을 했습니다. 아들은 여행 둘째 날 아침을, 딸은 점심을 사기로 했습니다. 각자 감사편지도 쓴다고 했습니다. 딸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축하 편지를 써놓았고 아들은 결혼기념일 당일 아침에 숙소에서 썼습니다. 아들은 여행 가서 편지를 쓴다고 여행을 떠나는 아침에 편지지랑 연필, 지우개를 준비하더군요. 아들이 그렇게 준비물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들은 결혼기념일 당일 일어나자마자 편지지를 달라고 하더군요. 미리 보면 안 된다고 이불과 온몸으로 편지지를 숨겨가며 한참을 썼는데 편지를 쓰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습니다. 편지를 다 쓴 다음에 편지봉투에 넣고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다 썼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편지는 식당에서 줄게."
식당에 가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지를 받았습니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맨날 노력할게요. 그리고 결혼기념일 축하하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말 정말 축하해요. 그리고 오늘 마신는(맛있는) 음식 사줄게요.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하고 밥 잘 먹고 쑥쑥 자랄게요. 그리고 학교에서 매일매일 친구들이랑 놀고 선생님 말슴(말씀) 잘 드를게요(들을게요). 그리고 축하해요. 정말 정말 축하합니다. 그리고 돌봄에서 친구들이랑 잘 놀게요. 그리고 오늘은 엄마 아빠가 먹고 싶은 음식 먹을게요. 그리고 결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정말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짜 진짜 감사해요. 그리고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사랑해요. 그리고 오늘 집에 가서 엄마랑 아빠랑 팽이놀이해요.
매 문장마다 '그리고'가 들어간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그러면서 엄마 아빠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 멋진 편지였습니다. 아들에게 받은 첫 결혼 기념 감사 편지였습니다. 아들이 너무 기특하고 예뻤습니다. 아들은 아빠의 뽀뽀 세례를 피할 수 없었지요.
딸은 점심을 사기로 했는데 점심값이 생각보다 비싸 와인을 선물로 사달라고 했습니다. 저녁에 아내와 축하 건배를 할 생각이었고 딸이 사주는 와인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즉석에서 바꿨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와인 숍에 가서 2만 원 내에서 가성비 좋은 와인을 추천받았습니다. 매니저가 1만 5천 원짜리 아르헨티나 말벡 와인을 하나 추천해서 그걸 구입했습니다. 술을 사본 일이 없는 딸은 돈을 내면서 한마디 하더군요.
"아빠, 술이 왜 이렇게 비싸?"
"좀 비싸네, 아빠가 집에 가서 5천 원 페이백 해줄게."
저녁에 아내는 딸이 좋아하는 찹스테이크를 만들었습니다. 식사할 준비가 됐을 때 저는 와인을 오픈했습니다. 그때쯤 딸의 편지를 열었습니다. 나름 꽤 괜찮은 타이밍에 아이의 편지를 열었지요.
엄마 아빠께
엄마 아빠 이 편지는 결혼기념일 축하편지예요.
엄마 아빠 내일 결혼기념일 정말 축하드려요.
낳아주시고 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힘들어도 잘 돌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매일매일 일(설거지, 빨래 개기, 밥하기)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절 믿어주시고 시험공부도 함께 해 주시고 학원도 보내주시고 원하는 것도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핸드폰은 원래 내년에 사주기로 했는데 미리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결혼기념일 정말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딸의 편지를 감동까지는 아니었지만 기쁘기는 아들의 편지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누나의 편지를 본 아들은 불쑥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나는 편지가 왜 그렇게 짧아?
그 말을 들은 딸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아들은 본전도 못 뽑았습니다. 괜히 한마디 했다가 누나에게 한판 패 당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장난을 지켜보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저는 아빠의 마음을 화이트보드에 편지로 전했습니다.
서영아, 서준아 엄마 아빠 결혼을 축하해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 가족 늘 지금처럼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자. ♡♡♡
그날은 아침편지가 아니고 저녁 편지가 됐네요. 아이들에게 답장을 쓰고 와인을 곁들여 어느 때보다 맛있고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며 아내가 한마디 하더군요.
"여보, 우리 결혼 참 잘했네, 사랑해."
그 말을 들은 저는 어땠을까요?
짐작하시겠지만 세상 남편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분이었습니다. 딸이 준 와인을 다 먹고 기분이 좋아 집에 있던 와인을 한 병 더 먹었습니다. 결국 아이들보다 먼저 잠든, 역시나 로맨스보다는 가족애가 충만했던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 결혼기념일에 로맨스를 느낄 수 없다고 아쉬워하기보다는 아이들을 결혼기념일의 주체로 만들고 우리는 축하받는 날로 정했더니 로맨스보다 더 큰 즐거움과 의미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으니까요. 앞으로도 결혼기념일은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축하하고 우리는 축하받는 날로요. 아이들에게 편지와 선물에 대해 알려준 것도 신의 한 수였습니다. 아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들의 감동적인 편지는 없었을 테니까요.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마음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몰라서 안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하나씩 가르쳐주려고요. ‘아이들이 스스로 하면 그땐 아이가 아닌 어른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