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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정 Dec 26. 2022

일상일기(23)밥 잘 사주는 예쁜 엄마


아빠엄마 장거리 여행간다니까 


딸이 농담처럼 말한다


“여지껏 부었던 통장이랑 보험증권은 


 잘 정리 해두었나? 


 파일로  가입 리스트 정리한 거 있으면 


 나랑 준호에게도 공유해주셈” 


여행가는 아빠 엄마가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자신들에게 물려질 재산을 놓칠까봐 걱정인 눈치다.


돈이 없어도 죄지만  


돈을 밝혀도 나쁜 것이라는


아이러니한 세계관에 길들어 살았던 나에겐


딸의 솔직함이 속물스럽다 못해 섭섭하다. 


키워준 것도 모자라서 물려받을 셈을 하고 있구만 


속으로 셈 해도 될걸 뭐 저렇게 대놓고 밝히나


어릴 적, ‘돈!돈!돈!’ 하는 엄마와 


돈에 무기력한 아빠를 보면서


돈은 골칫덩어리라고 생각했었다 


엄마처럼 ‘돈!돈!돈!’ 하는 것은 혐오스러운 것이고 


아빠처럼 무기력할 바에야 


무관심 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래서 돈에 대해 솔직하고 


타산적인 아이들을 볼 때면 


낯선 이국땅 공항에 처음 내린 느낌이다. 


나는 돈에 관해 뭐가 좀 꼬여있다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으면 


가격표를 살짝 열어보고 


” 되게 비싸네”  라는 말이 입밖에 나오기 전에 


호흡으로 환원하여 가슴으로 먹어버린다  


행여 나의 달랑달랑한 주머니 사정을 들킬까봐서다 


“어머 비싸다~~, 나 돈 없는데, 좀 깍아주세요” 


오히려 지갑이 두둑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말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돈이 없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고 


감추어야 할 일이지만 


드러내고 돈을 좋아하거나 


쫓아서도 안된다고 여겼다


빨간 불과 파란불이 동시에 들어온 


신호등 앞에 선 것처럼


가지도 서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오늘 딸 덕분에 돈과 정면으로 직면했다 


내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던 


돈에 대한 이중적 마음, 


두려움과 분노.. 


살살 달래서 양지로 데리고 나와 


빛을 쬐주고 바람을 쐬준다


“돈은 자유의 조건이고, 감사의 징표야,


 돈이 다는 아니지만 돈이 있어야 


 그 다음을 할 수 있어 


 내게 돈이 많이 들어온다는 건 


 세상이 나에게 많이 감사한다는 거야


 나도 돈이 있어야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


 감사건 위로건 격려건 마음을 표하려면 


 돈이 필요해. 


 돈을 너무 쫓을 필요도 없지만 


 너무 두려워하거나 피하지도 말자”


소유보다 공유, 성장보다 성숙이 중요하고


무한 성취, 무한 축적이 아니라 


절제와 균형이 


더 근원적인 풍요로움을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하게 삶을 향유하는데 


돈은 필요하다. 


터부시하며 몰래 흠모하는 것보다 


드러내고 솔직하게 균형을 갖추는 세련된 관계,  


돈과 그렇게 관계해야겠다  


예쁜 엄마는 물 건너 갔어도 


밥 잘사주는 엄마가 되려면 


돈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지만 


돈과 사이 좋은 친구는 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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