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혼이시겠어요?
아뇨 처음 신혼이예요
둘만 산건 처음이예요
남편이 시어머니, 시누이와 함께 살던 집에
화장대 하나 갖고 들어가 신접살림 시작해서
나는 결혼이 시댁식구들 집에
하숙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아이 둘 낳아 시어머니, 아가씨, 고모 손에
의지해 키우며
남편도 사업, 나도 사업,
각자 감당하느라
우리 집엔 늘 7명 정도의 사람들이 오고 갔어요
함께 살려고 결혼한게 아니라
서로 짊어져야 할 짐을 나눠지려고
결혼한 것처럼
애들일, 친정일, 시댁일 번갈아 터질때마다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 볼 겨를 없이
같은 방향으로 이어달리기하며
바톤을 넘겨받아
번진 불 끄고 고인 물 퍼날랐어요
가족들과 빙 둘러 앉아 공유하는 남편은
내 남편이기 보다
시어머니의 아들이었고 아이들의 아빠였어요
저도 남편의 아내로서의 자리는 순번에 없었고
애들 엄마, 친정의 딸, 시어머니의 며느리,
회사 대표의 역할로도 버겁고 벅찼어요
“너없이 못 살아” 하며 결혼했는데
“너까지 왜 그래” 하며
생사만 확인했어요
장롱처럼 조용히 신경 안쓰게 하는게
서로에게 최상의 서비스였어요
그러다 이제 비로소 둘만 살아요.
둘만 밥해 먹고 치우고 산책하고 영화보고..
둘만있으니 서로에 대해
몰랐던 걸 알게 되고
안 보였던 게 보여요
이십대 연애때 철 없던 눈으로
착각하고 오해했던 남편,
남편에게 환상만 있었던게 아니라
망상과 허상까지 있었다는 것을
25년 넘어서 조금씩 알게 되네요
‘ 하루 이틀 살았나, 내 잘 알지,
척하면 착이지’ 하며 흘려봤었는데
내가 여지껏 함께 산 남자가
이 남자 맞나 싶게 낯선 모습을 만나고요
그간 참 무디고 무신경하고 무관심했구나
깨달으며 미안하기도 해요
열정은 식고 설렘은 사라졌지만
함께 감당한 세월만큼
추억과 신뢰가 쌓여서
고소하게 깨 쏟아지는
젊은 신혼만큼은 아니어도
구수한 미숫가루만큼은
때늦은 신혼 재미가 쏠쏠찮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