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라면 맛집

by 정새봄

내 생애 최고의 라면 맛집


국민학교 2학년 때 전학을 갔었다

과밀학교로 전학을 가서 나의 번호는 62번

다음 주에 새 친구가 전학을 왔다

지원이의 번호는 63번


지금은 서로 결혼하고 바쁘게 사느라

가끔 전화만 주고받고

20년 정도 만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기에 추억도 많다.

전화할 때마다 그 친구 하는 말이

"너희 집에서 끓여 먹었던 라면이

내 생애 최고의 라면이었어."


그 당시 우리 집은 내 인생 중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힘들 때였다.

반지하 단칸방에 늘 바쁜 엄마는

음식에 신경을 쓰지 못하셨다.


냉장고에는 김치밖에 없고

대접할 것은 만만한 라면이 전부였다.

공간도 부족해서 머리 맞대고

호호 불어가며 먹던 라면


난 그 시절을 기억에서 지웠나 보다

사라진 기억을 친구가 상기시켜 준다.

바빠서 얼굴도 보기 힘든 우리 엄마를

지원이는 세상 좋은 엄마로 기억해 준다


고맙다 친구야!

나도 몰랐던 기억을 아름답게 추억해 줘서





자존심 세고 지는 거 싫어하던 내가 유난히 이 친구 앞에서는 부끄러운 것이 별로 없었나 보다. 우리 집 형편에 비하면 너무다 풍족했던 친구인데 그렇게 우리 집에 오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교수님이고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 그리고 그 당시에 건물주까지.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친구가 우리 집 오는 것을 꺼리지 않으니 나도 마음이 열린 것 같았다.


내 집 보여주기를 허락하지 않은 민감한 시기에 늘 맛있다고 해주고 놀러 오면 편하게 있다가 가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더 가지고 태어났다고 잘난 척할 필요도 없고

없이 태어났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우리를 보며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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