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통증에 유난히 약한 편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통증을 잘 느끼고, 작은 통증에도 많이 아파하는 편이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 초등학교에서 주사를 단체로 맞는 날이면 전교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맞을 정도로 여기저기 잘도 피해 다녔다. 초등학교 1학년때는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철수 직전에 맞은 기억도 있고,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전완근 부위에 1차로 맞고 부은 정도에 따라서 어깨부위에 2차로 맞는 상당히 아팠던 주사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붓게 만들어 피한 경우도 있다.
이렇듯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엄마를 피곤하게 만들었던 아이였다. 엄마가 괜히 잘해주는 날이면(짜장면 먹거나 가게에서 빵 등을 사주는) 오늘 주사 맞는 날이냐고 따지고 그런 낌새가 보이면 줄행랑을 치곤 했다.
엄마와 춘천 여행을 가는 길에 차가 막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치아를 뽑는 날의 악몽 같은 추억을 떠올렸다. 항상 집에서 이를 뽑았는데 유난히 안 뽑혀서 내 생애 처음 치과를 간 날~~ 엄마와 꼭 치과 치료를 받기로 약속을 하고 어른처럼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안쪽에서 내 또래의 아이가 소리치는 것을 보고 1차 도망을 쳤다. 엄마가 급하게 따라와서 잡혀 들어갔는데 2차 3차까지 도망을 치고 급기야 엄마는 나를 놓치고 말았다.
한참을 헤매다가 집으로 들어갔는데 가까이 사는 둘째 이모가 집에 와 계셨다. 인사를 하기 무섭게 엄마가 내 몸통을 잡았고 이모는 내 기억에 고추장을 섞을 때 사용하는 큰 나무 주걱을 들고 계셨다. 아마 지금 보면 완전 코미디 같은 장면이었을 것이다. 이모가 나무주걱으로 겁을 주고 엄마는 나를 붙잡아 놓고 이에 간신히 실을 감고 내 이마를 치는 순간 거짓말처럼 아프지 않게 이만 '쏙' 빠져나왔다.
병원을 한번 가려면 나에게도 고통이었지만 엄마에게는 몸과 마음이 지치는 그런 날이었다고 한다. 그런 내가 큰 수술도 여러 번 받고 병원에 아프기 무섭게 다니는 것을 보면 엄만 그때마다 그렇게 난리를 치던 아이가 왜 이렇게 잘 다니냐며 너무 신기해하신다.
남들은 어렸을 적 무료로 맞는 동사무소에서 놔주는 무료주사도 나는 돈을 내고 맞을 정도로 유난이었다고 한다. 지금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새삼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드센 딸로 인해서 고달팠을 엄마가 상상이 된다. 그래도 엄마덕에 건강하게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