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엄마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어

by 정새봄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때 전학을 갔다.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워낙 과밀 학교로 전학을 간 바람에 나의 번호는 62번이었다. 다음날 또 다른 친구가 전학을 왔는데 63번의 지원이라는 친구였다. 어찌하다 보니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밖에 안 되고 서로 낯선 환경에 노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같은 지역에서 살면서 흔히 남자들이 말하는 불알친구 같은 사이가 되어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이 친구의 추천으로 교회도 나가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로 인해 나의 사춘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이런 고마운 친구와 각자 결혼해서 바쁘게 사느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끔 전화로 안부를 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네 엄마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인 건지... 사실 이 친구는 상당히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대학교 교수님이시고,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로 두 분 다 교육자이면서 정년퇴임까지 한 그런 분들이었다. 내 어릴 적 기억에 건물주여서 임대를 놓고 여유 있게 살던 그런 친구였는데, 우리 엄마가 자기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친구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부모님이 항상 바쁘시고, 두 분이 자주 다투셔서 사이가 좋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집은 엄마가 항상 분식집이며 포장마차 등 생활전선에 뛰어드셔서 힘들게 일하셨지만, 가끔 그 가게를 찾아가거나 길에서 우리 나원씨를 만날 때면 그 누구보다 반가워하며 인사해 주시고, 먹을 것도 그렇게 많이 챙겨주시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하 셋방에서 살 당시에 지원이 말로는 우리 집에서 끓여 먹는 라면이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고 한다. 나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이런 작은 기억들을 친구는 너무도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원래 가족끼리는 투닥거리고 남보다 못하게 다정하지도 않은 것이 특징이지 않은가? 우리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말도 잘 안 하고 지내던 시절도 있었고, 가족에게 더 못된 말을 서슴없이 하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 가족도 아닌 친구가 나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것을 고마워하며 추억을 더듬는 모습이 생소했다.


그런 엄마가 나의 엄마라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기도 하고 너무 고맙게 느껴진다. 최근에 다녀온 여행에서 나도 몰랐던 이야기를 듣고 서로 대화하는 중에 이 말을 전했더니 엄마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신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해 준 친구덕에 여행이 한층 더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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