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9

엄마를 이해하게 된 순간

by 지금

여기에 있는 글들은 나만의 기록이지만, 당신의 기억과도 닿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엄마를 이해하게 된 순간이 제삼자가 가족이 된 이후부터라면, 나는 좀 늦은 편에 속하는데 나의 늦은 결혼이 그 이유가 되겠다.


어렸을 때 엄마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막연하게 우리의 나이차이가 달라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결국 사람은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엄마를 한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 울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며, 웃음이 많다고 해서 마냥 밝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즈음부터 엄마의 사소한 표정에 마음이 몹시 흔들렸다.


언제나 강인한 모습이던 엄마가 사실은 누구보다 여린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뭐든 척척해내고, 아프다는 말을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고, 늘 내 걱정뿐인 사람.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늘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사는 엄마는 아빠가 살아계실 때에도 "엄마 아빠가 부담되면 언제든지 말해, 걱정하지 말고"라는 말을 참 많이 했었다. 그럴 때마다 친근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입을 꼭 다물고 눈물을 참았던 것은 그 마음이 어렴풋이 이해가 가서였을지, 정말 외동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걸까 라는 의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시던 날, 아빠가 돌아가 시 던 날과 3일의 장례식, 그리고 나의 결혼식에서 엄마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평소에 내가 아는 눈물이 없었던 건 나에게 보일 눈물을 삼켰던 것이겠지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어린애처럼 울던 엄마는 그냥 한 사람의 딸로, 아내로, 엄마로 그렇게 꾹꾹 참아왔던 거겠지


지금의 남편이 엄마에게 나 대신 살가운 딸 노릇을 해준 덕분에 엄마는 이야기 나눌 사람이 너무 필요한 사람이고, 엄마의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한 없이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더 느끼게 되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순간마다 남편에게서 보이는 사랑스러운 눈빛들과 엄마의 아이 같은 모습들을 마주한다. 왜 나는 그러지 못하는가라는 자책과 함께


결혼 후 직장 문제로 떨어져 지내고 있는 지금은 매일 엄마와 저녁을 먹으러 집에 가곤 하는데, 가끔 일이 생겨 못 가는 날이면 생각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온 집안 식구들을 다 데리고 살았고, 내가 태어나고 몇 년 있다가 집을 나간 아빠 대신 외할머니와 셋이 지내게 되었었다. 그전에는 친할머니도 집에서 모시고 있었고, 아빠가 다시 집에 돌아온 지 20년이 안돼서 아빠가 올해 돌아가셨다. 엄마는 내내 집에 혼자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아무도 없는 밤이 참 걱정되었다. 결국 혼자인 것이 인생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비로소 80년 만에 혼자가 된 엄마의 밤이 무섭지 않기를, 평안한 밤이 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도하곤 한다. (누구에게 하는 기도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꽤나 겁이 많은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지금의 남편과의 연애기간과 짧은 결혼 생활을 통해 좀 다듬어져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인데, 엄마를 보면 나를 마주할 때가 많다.


밤이 되어 작은 소음에도 놀라는 엄마가,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해서 매번 자기 것을 내어주고 마는 엄마가, 나누는 것이 최고라며 동네 어른들까지 살피고 걱정하는 엄마가 그저 나와 닮아서, 아니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아서 이제야 조금 엄마를 알게 된다.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내 작은 이해가 엄마한테 늦지 않게 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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