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길을 말한다. 누구나 오르고 누구나 걸어왔다는, 이미 발자국으로 가득한 길을. 그러나 내 눈앞에 펼쳐진 길은, 아직 그 누구의 발자국도 닿지 않은 황량한 바다와 같다. 태초부터 이어져 온 운명의 지도에도 그려지지 않은 길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이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늘 미지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길이 창대할지, 혹은 미약하게 끝날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가야 한다는 것 외에, 걷고 있다는 사실 외에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채로 우리는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디딘다.
아직 몇 일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시간은 언제나 한 줌의 모래처럼 흐트러진다. 손으로 움켜쥐려 하면 더욱 빠르게 흩어진다.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볼 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이 길은 어차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만의 것이다. 그 끝이 찬란할지 미약할지조차도, 길 위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바다를 항해하는 자가 바람을 예측할 수 없듯, 우리는 어디로 향할지 알지 못한다. 가끔은 미약해 보이는 끝이 창대한 시작이 되고, 때로는 찬란한 출발이 어두운 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끝의 의미를 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두려움과 희망, 기대와 회의, 그런 것이 범람하는 바다 위에서 나는 그저 나아갈 뿐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간다.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