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란 말이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천하를 꿈꾼다는 것은, 별이 되어 하늘을 덮거나 바다가 되어 땅을 감싸는 것과 같았다. 무한히 펼쳐진 공간 위에서 한 점으로 머무는 삶은 지극히 초라한 것이었으나, 천하인이란 말 속엔 그 초라한 삶마저도 장엄한 우주로 바뀌는 듯했다.
누구는 천하를 정복하겠다 했고, 누구는 천하를 다스리겠다 했으며, 누구는 천하를 구원하겠다 했다. 그러나 진정 천하인이란 무엇인가. 천하인이란 천하를 품으면서도, 천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손바닥 안에 쥐고자 애쓰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모래알처럼, 천하는 집착하는 순간 그림자로 흐트러진다.
본래 인간의 삶이란 흐르는 물과 같아, 손아귀에 움켜쥐려는 욕망을 버릴 때 비로소 그 흐름과 하나 될 수 있는 법. 천하인이란 그 물과 같은 삶 위를 유유히 떠가는 존재였다. 강물처럼 흐르면서도 결코 멈추지 않고, 비바람이 치더라도 오히려 비를 맞으며 더 맑아지는 그런 사람.
그리하여 천하인이 되려는 자는 끝없는 고독과 마주하게 된다. 모든 이들이 바라보는 곳에서 눈을 돌려, 누구도 걷지 않은 외로운 길 위에 발을 내딛는다. 군중이 환호하는 영광 대신에, 달빛만이 고요히 비추는 그림자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그래서 천하인은 홀로 서는 사람이다. 사람을 품되 결코 기대지 않고, 사랑하되 결코 얽매이지 않는다. 사람이기 때문에 고독하지만, 사람을 초월했기에 자유롭다. 그들의 발자국은 땅에 찍히지만, 마음은 이미 하늘을 걷고 있다. 그 어떤 족적도 남기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길만을 기억하며 나아갈 뿐이다.
나는 천하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세상 모든 영화를 버리고 가는 그 뒷모습에선 쓸쓸한 아름다움이 피어났다. 그들은 결코 자신이 천하인임을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허공처럼 웃을 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천하인이란 천하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천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천하를 얻고자 하면 천하는 먼지처럼 흩어질 것이요, 천하를 버리고자 하면 비로소 천하는 그 사람 곁에 머무를 것이다. 그것이 천하인의 역설이었다. 그리고 이 역설이야말로 인간이 감히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꿈이었다. 천하를 손에 쥐지 않아도 이미 천하에 있는 사람. 그것이 진정한 천하인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