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종종 운명이란 이름 아래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에 집착한다. 허나 그 고통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가를 묻는다면, 과연 뭐라 답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자들은 잘 안다. 몸이든 마음이든 결핍은 손가락질을 부르기 마련이다. 어쩌면 결핍을 품고 살아가는 자는 그 손가락질에 위축될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손가락질을 시작한다. “왜 나는 이렇지?”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고통으로 규정하고, 결핍을 불행으로 단정짓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 매여 있을 때, 어떤 어른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말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가는 길에 그만 말이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분명히 비극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뒤따르던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눈앞에서 죽음이 스쳐 지나가자 그는 문득 깨닫는다. 다리가 부러진 덕에 목숨을 건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쯤 되면 다리가 부러진 것이 좋은 일이었는지, 나쁜 일이었는지 혼란이 온다. 처음에는 분명 불행이라 여겼던 일이 오히려 구원이 된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잠시 멈춰 생각해 보면, 결국 '다리가 부러졌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그에 대한 해석은,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평가는 상황이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하다.
행복과 불행이란 본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무심한 세상은 그저 우리의 다리마저도 꺾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꺾인 다리 위에서 우리는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내가 겪는 고통이 유난한 불행이라 여기는 순간, 다른 이의 죽음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허나 그러한 위로는 한낱 비교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은 처음부터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가 고통을 고통으로, 행복을 행복으로 여기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다만 세상에 부딪히며 이리저리 왜곡된 눈이 만든 착각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