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아래서

by 박경현

밤이 되면 도시에는 어김없이 불이 들어온다. 가로등이 서서히 그 불빛을 드러내면, 온통 어둠이 내린 거리에는 작은 별들이 박힌다. 빛은 보드랍게 퍼져 나가면서도 끝끝내 어느 정도 선까지만 나아가고, 그 선을 벗어난 어둠은 더욱 짙어진다.

가로등은 참 기묘하다. 한낮에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지만, 밤이 되면 오직 그것만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무심코 그 빛 아래 모여들고,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가로등은 누군가를 비추기 위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일까?

가로등은 묵묵히 선 채 빛을 흩뿌린다. 그 빛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스스로는 모를 것이다. 그냥 서서 빛을 비춘다.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는지도, 그것을 지나쳐 가는지도 상관없이 그저 있을 뿐이다. 존재하면서, 사람들의 시선과 무관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가끔은 무의식적으로 그 불빛 아래 모여든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조차 잠깐이다. 그저 비춰지는 것, 빛나는 것, 그 둘 사이의 미묘한 경계가 그것의 자리다.

비가 오는 날에는 그 빛은 더 흐릿하게, 더 슬프게 번진다. 가로등 아래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빛을 머금고 흐릿하게 일렁인다. 그 빗방울들 속에 조용히 묻혀, 가로등은 묵묵히 자신을 지킨다. 그 빛 속에서 누군가는 발길을 멈추고, 또 누군가는 지나친다. 멈춰 선 자에게 가로등은 잠깐의 위안을, 지나는 자에게는 잠깐의 방향을 준다.

그렇기에 가로등은 고독하다. 혼자이지만,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비추고, 그들의 그림자를 만들어 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작 가로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치는 것, 스쳐 가는 것. 어쩌면 세상은 그런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어둠 속에 고요히 빛을 비추는 존재들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그곳. 가로등 아래엔 언제나 고요한 빛이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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