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에 관한 고찰

by 박경현

달팽이는 거기 있었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축축한 흙 위에, 이슬이 맺힌 잎사귀 아래에, 아무도 보지 않는 그늘 속에. 그것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팽이는 살아 있었다. 작은 생명, 느리고도 더딘 리듬을 지닌 몸으로, 그것은 분명히 '살아있음'을 증명하며 존재했다.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이 여행을 멈추지 않은 채, 느릿한 몸짓으로, 무언가를 남기며. 미끄러지듯 이어진 흔적, 은은히 빛나는 점액의 길. 마치 자신이 지나온 길을 잊지 않으려는 듯, 자신이 살아온 삶을 흔적으로 남기며 흙 위를 나아갔다. 마치 조용한 언어로, 세상에 속삭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여기 있다. 이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또 다른 길로 향해 가고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무의미한 움직임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달팽이의 더딘 움직임 속에 담긴 그 시간과 노력을, 단지 느리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그 느린 속도 속에도 분명한 의지가 있었다. 생명을 잇고, 흔적을 남기고, 오늘을 살아내고자 하는, 그 작은 몸에 깃든 강한 생의 의지.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반짝이는 길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가 지나온 길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든, 그 흔적은 결국엔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남기는 그 길,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달팽이는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 그 길의 끝이 어디일지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루의 여정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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