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다구씨는 습관적으로 TV를 켠다. 집에 아무도 없지만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 아무도 묻지 않았기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싸다구씨의 습관성 TV 켜기. TV를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 낭만적인 사람들의 집에서는 음악이 흐르겠지만, 심드렁한 싸다구씨의 집에는 TV 소리만 들린다.
최근엔 종편을 본다. 노인들의 방송 취급을 받는 종편을 틀어놓는 싸다구씨의 이유 역시 아무도 묻지 않으니 알 수 없다. 이전과 다른 점은 5분, 10분 종편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아파트에서 싸다구씨의 숨소리와 종편의 말소리만 들린다. 싸다구씨의 아파트는 사람 가득하지만 핸드폰만 쳐다보는 지하철의 미니어쳐. 지하철을 탄 사람들이 지하철 노선을 공유하듯 싸다구씨와 종편은 공간속 파동을 교감한다. 서로에게 말 걸지 않고 서로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할 뿐이다.
싸다구씨는 궁금해졌다. 종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은 평론가와 정치인과 변호사. 정치인은 알겠다. 평론가도 알겠다. 말 잘하는 평론가들을 보니 부럽다. 말 잘하는 이유로 방송 출연을 계속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평론가 중엔 전현직 언론인들이 많다. 언론인들은 좋겠다. 말로 먹고살 수 있으니 대단하다. 남들은 힘든 노동으로, 누군가는 살인적인 업무로, 누군가는 머리로 먹고사는데 혀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니 혀로 번 음식을 혀로 넘기니 가장 완성된 커리어다. 알 수록 부럽다.
변호사는 기묘하다. 변호사는 법 전문가들인데 나와서는 정치평론을 한다. 정치는 법 줄타기를 하는 행위라 전문적인 법이 필요한 걸까? 나오는 변호사들도 거의 반고정이다. 변호사가 이름이고 패널이 직업인 것 같다. 저 변호사들은 왜 방송인이 되는 걸까? 혹시, 변호사도 말을 잘하기 때문일까? '악마의 변호사'라는 영화에 출연했던 키아누 리브스가 떠 오른다. 잘생긴 놈. 멋짐과 잘생김을 가진 외모가 쏟아내는 혀의 예술을 키아누 리브스보다 잘 표현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영화배우와 현실의 오징어들의 생김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변호사와 현실의 변호사의 외모차이는 비디오테이프와 블루레이 화질 차이를 너끈히 씹어먹을 만큼이나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기묘하다. 저 변호사들은 하루 종일 뉴스만 보는지 모든 세상일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코로나도 알고, 여당과 야당도 알고, 미국과 중국도 알고, 북한도 알고, 정부 정책도 알고 세상모르는 게 없다. 우리나라에는 패널 육성 변호사 특별반이 있나 보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 싸다구씨는 패널 아카데미가 있고, 변호사 특별 전형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변호사들이 끊임없이 TV에 출연 할리 없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아닐 수도 있겠지. 싸다구씨가 오히려 '아니면 어쩔 거고, 기면 어쩔 건데?'라고 묻는 것처럼 입술을 샐쭉하고는 노트북을 연다. 켜진 TV에서 변호사는 여전히 세상 만사를 이야기하고 있고, 공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싸다구씨는 침묵한채 노트북을 두들기는 기묘하지만 익숙한 하루가 지나간다.